그리움의 조각 3
끝날 것 같지 않던 길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샌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고마운 바람 덕분에 산책을 다시 시작했고 또 그 덕분에 구민회관의 에세이 강좌를 접수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설렘을 오랜만에 느끼며 첫 수업을 만나러 갔다. 기분 좋은 떨림이 발걸음을 신나게 만들었다.
첫 수업의 주제는 이름이었다. 이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름이라.....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요동을 치더니 두 개로 좁혀졌다. 부모님 , 엄마, 아마도 명절 끝이라 이 단어들이 제일 먼저 생각난 것 아닐까.
세월은 사람을 무뎌지기 만든다. 돌아가신 지 30년이 흐른 지금은 이제 옛날처럼 엄마를 생각하며 무작정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그냥 묵묵히 보고 싶고 그리울 뿐이다.
그러면서 기억 저편에 잊혀가던 그리운 엄마의 이름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조유감
엄마의 특이한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외할아버지께서 엄마가 둘째 딸로 태어나자 아들이 아니라서 유감스럽다고 그렇게 지으셨다고 했다. 셋째는 꼭 아들이 태어나길 바라시면서 말이다.
그 후 엄마의 이름 덕분인지 외할아버지의 바램은 이루어지셨다. 그래서인지 유독 엄마를 이뻐하셨다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그 이름을 떠올려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잠시나마 따듯하고 재미난 추억들을 생각하며 행복했다. 어느새 수업이 끝나고 나오니 밖에는 가을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왠지 빗소리에 엄마가 해주시던 녹두전이 먹고 싶어졌다.
엄마는 고기대신 잘 익은 김치를 다져 올려 매콤 고소하게 얇게 부쳐 주셨다. 바삭한 녹두전과 살얼음이 살짝 언 식혜와 함께 먹으면 어떤 음식보다도 그 맛은 단연 1등이었다.
엄마가 녹두전을 부쳐주실 때면 나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방금 부친 고소한 녹두전을 호호불어 작게 잘라 입에 넣어 주시곤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엄마가 해주시던 그 녹두전을 그리워하며 이젠 내가 딸에게 해주고 있다. 딸도 어릴 적 나처럼 아기새가 되어 입을 벌리고 행복해한다. 그것을 보며 나는 또 엄마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녹두전을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