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소풍길

그리움의 조각 2

by 조작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아빠는 8년 가까이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삶에 의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매일 아빠를 위해 음식을 하고 청소를 하던 엄마는 더 이상 없었다. 단정하던 머리는 푸석해지고 의욕 없는 눈빛으로 소파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다. 계절마다 담그시던 김치도, 장마 되기 전 담그시던 오이지도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실향민인 엄마에게 아빠는 유일하게 의지하고 살았던 사람이었고 세상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의욕이 없이 지내던 엄마가 아빠의 1년상을 지내고 나서는 갑자기 온양온천에 가자고 하셨다. 오빠와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온천탕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설렁탕을 먹었다.식당에서 나오면서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맏며느리인 엄마는 시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으셨던 것 같다. 산소에 도착해서는 여기저기를 살펴보시고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시듯 절을 하시고는 한참을 앉아 계셨다.


온천에 다녀온 며칠뒤 이번에는 고모들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고모들은 세분이 계셨는데 양평 병점 춘천에 흩어져 살고 계셨다. 하루이틀에 다녀올 수 있는 여정이 아니었다. 오빠는 시간을 뺄 수가 없었고 고민 끝에 나는 예비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차가 있었던 남편은 휴가를 써가며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먼저 춘천에 있는 막내 고모집으로 향했다. 춘천에서도 한참을 들어간 양구라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 고모의 집이 있었다. 엄마는 마치 친정 동생집에라도 오신 듯 고모의 집 여기저기를 살펴보시고 안부를 물어보셨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양평에 있는 큰 고모댁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 둘째 고모까지 오셔서 모두 만날 수 있었다.

고모들과 엄마는 밤새 웃고 울며 세월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그들만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아마도 엄마에겐 고모들이 어려운 시누이들이 아닌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족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렇게 3박 4일 동안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평소 다니시는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약도 먹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았다. 뚜렷한 병명도 없이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하시고 힘들어했다.

그때 엄마나이가 68세였고 내 결혼식 한 달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나이도 아닌데 아빠의 긴 병간호 때문이었을까 내 눈엔 엄마가 무척 늙어 보였다.

고민 끝에 우린 엄마를 요양시키기 위해 입원을 결정했고 결혼식 전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원한 다음날 엄마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그날의 기억은 정말 끔찍했다. 제일 좋아하던 아들이 퇴근해서 병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밥은 먹었니?"라고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순간 눈의 초점이 없어지면서 정신이 혼미 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온 힘을 끌어모아 아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몇 시간 후 엄마는 혼수상태에 빠져 버렸다. 나는 중환자 대기실에서 쪽잠을 자며 24시간 대기했다. 하루 세 번 면회를 가서 엄마의 얼굴과 손, 발을 닦아주고 주물러 주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의 귀에 울먹이며

"엄마 나 어떡해? 빨리 일어나서 알려줘~,엄마 막내 좀 도와줘"말하곤 했다.

결혼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끝에 집안 어른들께 물어봤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아마도 엄마는 그냥 진행하기를 원할 거라고 고모들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데 결혼식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힘들었다.

결국 엄마가 그것을 원할 거라는 고모들의 말에 힘을 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식 전날밤 11시쯤 병원에서 전화 왔다. 언니와 오빠가 병원으로 갔고 몇 시간 뒤 울면서 돌아온 언니들은 인공호흡기를 하고 계시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죽음을....


그날 밤은 오빠와 작은 형부가 엄마옆을 지켰다. 내 결혼식 사진에는 부모님과 그 두 사람이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난 지금 오빠와 작은 형부도 부모님을 따라갔다. 부모님과는 다르게 형제의 죽음은 또 다른 슬픔의 감정이 나를 힘들게 했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삶의 끝을 정리하고 계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을 찾아가 살피며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엄마의 방식으로 인생의 여정을 마무리하신 것 같다. 어쩜 이북에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못한 인사를 대신하신 것은 아닐까

아빠가 아프시고는 엄마와 나는 함께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소소한 기억 외에는 추억이랄 게 별로 없다. 엄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도 3박 4일의 여행을 하면서 짧게나마 좋은 추억을 주고 가신 엄마 덕분에 난 지금도 그 힘으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힘들 때면 그때의 기억을 조금씩 꺼내어 퍼즐을 맞추듯이 기억하며 위로를 받는다.

작가의 이전글내 생의 최고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