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지 못할 숙제

그리움의 조각 4

by 조작가

사람들은 가을을 탄다고들 말을 한다. 온 세상이 알록달록하게 물든 풍경들을 보며 감탄하고 슬퍼하며 외롭다고들 한다. 나도 옛날에는 찬바람이 불면 말라비틀어진 낙엽들이 마당에 떨어져 나뒹구는 모습이 지저분해 보였고 또 스산하게 부는 바람소리에 창문이 흔들리면 소름이 끼쳐 무서웠다.

또 여름과 다르게 일찍 해가 저물어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간 텅 빈 놀이터가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찬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고 때론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예쁘게 물든 단풍들을 보며 감상에도 젖어본다.

또 쌓인 낙엽들을 보면 시간이 지나서 훌륭한 퇴비가 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 텅 빈 놀이터를 보면 조용하고 한가로워졌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지금은 더 이상 가을이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오히려 어른이 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봄을 타는 것 같다. 산과 들에 샛노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즐겁고 분홍색의 진달래는 마치 수줍게 시집가는 새색시가 생각나는 듯하며 몽실몽실한 꽃망울이 마치 팝콘처럼 터진 벚꽃들을 보면 온 동네가 축제라도 하는 것처럼 흥분된다.

춥고 어두운 긴 겨울의 터널을 끝내고 드디어 따뜻한 봄이 시작되는 것을 느끼며 무척 반갑고 신난다.


그러나 그 기분은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이내 봄을 짜증 내고 버거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봄이 되면 유난히 감정기복도 커지고 외로움이 심해지며 짜증도 요란하게 핀다. 집에 있기도 싫어지고 그저 만만한 남편만 괴롭히는 못된 변덕쟁이가 되어 심통을 부린다.


사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봄이 어떻게 왔다가 갔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고 내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증상이 심해졌다.

나의 깊은 내면에서부터 뭔지 모르는 어둠의 그림자가 슬금슬금 올라와 내 자신을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여보 나 자존감이 또 바닥을 치려고 그래 , 나 어떡해 , 도와줘 "라고 말하면 남편은 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다.

막춤을 추며 노래도 불러주며 애를 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면서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치 풀지도 못하는 밀린 숙제를 하듯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그 끝에는 엄마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새싹들이 기지개를 켜고 꽃이 활짝 피는 봄에 엄마를 보내고 우울증에 힘들어했다.

밤에 자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슬퍼서 일어나 운 적이 많았다. 그럴 때면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놀라 일어나 엄마대신 꼭 안아주며 위로해 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들을 임신했고 엄마가 없는 일상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면서 문득문득 엄마의 따뜻한 품과 냄새 그리고 음식, 그 모든 게 그리웠다.

임신해서 입덧이 심했을 때, 아이를 낳고 몸조리할 때, 친정엄마가 김장김치를 보내줬다며 지인이 김치를 나눠줄 때, 몸이 아플 때, 특히 명절이 되면 더 엄마가 그리워졌다.


또 한 번은 동네 아는 이들로 인해 화가 난적이 있었다. 나는 집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엄마가 내게 해주던 것처럼 가족들을 챙겼다. 그런데 뒷말이 오고 가는 걸 알게 되었다.

'ㅇㅇ맘은 집에서 음식도 잘해먹고 가족들 건강도 잘 챙기더라.'

'이그 챙겨 주는 친정 엄마가 없어서 본인이 챙기는 거야.'

너무도 철없는 그들이 말이 어이가 없었고 상처가 되었다. 그렇게 늘 엄마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남아 아쉬웠다. 역시 풀 수 없는 숙제들이었다.


가끔 꿈에서 엄마를 만난다.

따뜻한 손길과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포근한 품에 안겨 펑펑 울다가 깨곤 한다. 그런 날은 내가 어린아이가 되어 맘껏 위로받은 기분이 들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단풍으로 예쁘게 물든 지금 국화꽃 한 다발과 술 한병 들고 엄마를 만나러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그런데 문득 '엄마는 어떤 계절을 좋아했었지?' 생각을 해보니 모르겠다.

엄마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순간 들면서 그런 내가 싫어졌다.

더 이상 봄이 나에게 의미 없는 계절이 된 것처럼 엄마에게도 의미 없는 계절이 존재했을까?

이것 또한 내가 영영 풀지 못할 숙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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