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원했지만,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은 쉬는 날이 없다시피
아침부터 새벽까지 장사에 숨 가쁜 하루하루를 바치셨다.
나는 그 등 뒤를 바라보며 자랐다.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삶의 무게 속에서
묵묵히 견디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의 손은 늘 거칠었고,
피곤에 지쳐 잠드는 그들의 하루 속에서
자식의 삼 시 세끼를 챙겨주는 것조차 사치였다.
먹고 살아가기도 버거운 그들에겐
어린이날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다는 투정도,
끼니를 놓친 딸들이 손님이 남긴 음식을 주워 먹는 것도,
엄마냄새가 고픈 자식들을 안아줄 여유도 없었다.
사랑과 정에 굶주린 마음은
기다림에 스스로를 달래며 자라났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늘 무언가에 목이 말랐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그 갈증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사랑은 함께 있는 시간의 길이로 증명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이 떠난 지금, 딸아이는 그때 나보다 더 혹독한 세상으로 던져졌다.
나의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지키려 할수록 더 큰 장애물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은 생각들로 바쁘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책가방, 여기저기 허물 벗어 놓은 옷가지들, 나뒹구는 과자봉지들,
동영상만 종일 보고 있어도 괜찮다.
괜찮다.
그저,
그냥,
울다 지쳐 있지 않기를.
무기력에 휘감겨 있지 않기를.
그리움에, 외로움에, 허기진 모습이 아니기를...
집에 오자마자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지없이 딸의 방문은 잠겨있다.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다. 저녁약을 먹었는지 확인했다. 역시 먹지 않았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먹여야 했다. 많은 고민 끝에 약을 먹이기로 했고,
오랜 시간 꾸준히 복용해야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 했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었다.
심리 검사 결과, 아이의 상태를 염려하셨고 조심스레 병원 진료를 권하셨다.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예전에 중단했던 심리치료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어진 상담과 검사 끝에,
아이는 ADHD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어쩌면 정해진 순서였을까.
충격과 절망을 번갈아 세워 놓은 도미노 같은 인생.
약을 먹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스스로 챙겨 먹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딸은 먹겠다고 했다가도 금세 마음을 돌리곤 했다.
아침에 직접 챙겨주는 약은 그나마 먹었지만, 저녁약은 사정이 달랐다.
늦은 퇴근으로 아이가 자고 있는 날도 있었고,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날엔 방 문을 잠그고 나오질 않았다.
그날, 오늘은 약을 꼭 먹여야 한다는 초조함이 밀려왔다.
어린 나이에 정신과약을 먹이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먹이기로 했으면 꾸준히 먹을 수 있게 잘 챙겨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이는 끝내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억지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잠들었다면, 딸아이의 볼을 쓰다듬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싶었다.
느닷없이 밀려왔을 그리움,
아빠의 빈자리를 가득 채운 슬픔,
술렁이는 삶을 견뎌낸 오늘을 위로하고 싶었다.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오로지 구해내고 싶은 마음, 그것뿐이었다.
"먹기 싫다고 했잖아!
효과도 없는 약을 왜 억지로 먹여!
내가 정신병자야?!
왜 자꾸 날 정신병자 취급해!"
예정해 둔 스토리는 한낱 상상에 불과했다.
현실은 늘 내 기대를 비켜갔다.
딸은 약을 먹이려는 내 손길에 거칠게 소리치며 밀쳐냈다.
그 소리는 방 안을 울리며,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억지스러운 희망을 힘겹게 끌고 왔건만,
돌려받는 건 속절없이 가라앉는 딸이라니.‘
나는 결국, 간신히 잡고 있던 평정을 놓아 버렸다.
"그냥 먹기만 하면 되잖아!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어?
얼마나 더 힘들게 할 건데?
엄마를 얼마나 더 밑으로 끌어내릴 거야?
너 먹여 살리려고, 살아보려고 발악하는 거 안 보여? "
악을 쓰며 화를 토해냈다.
"누가 그렇게 살래?
나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나도 이제 모르겠어!
살기 싫다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친구도 없고, 아빠도 없고...
나한테 남은 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딸의 목청이 찢어질 듯한 울부짖음에 가슴이 그대로 꺾여 내려앉았다.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날카롭고,
비명이라 하기엔 너무 절박한 소리였다.
"넌... 넌 너밖에 몰라?
여기 안 힘든 사람이 누가 있어!!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딨 냐고!!"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목소리,
말끝마다 생살을 도려내는 듯했다.
내 안의 감정도 함께 비틀려 제어를 잃어갔다.
그러다 아이의 입에서,
내가 외면하며 버텨온 죄책감을 찢어내 보였다.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이렇게 만든 거라고!"
숨이 멎을 만큼 뜨거운 비난이 얼굴에 튀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숨이 아니라 심장을 멎게 했다.
"엄마가... 아빠를 빨리 발견했으면...
아빠... 살 수도 있었잖아...
엄마가 아빠를 죽인 거야!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의 말에 울컥한, 순간의 분노가 만들어낸 흉기였다.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엄마의 마음이,
정말로 혼자 남겨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아이를 먼저 배었기에 튀어나온 절규였다.
내가 먼저 아이에게 던졌던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더 크게, 더 깊이, 내 뼛속까지 박혀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어른도, 엄마도 아니었다.
아이 앞에서 미처 감정을 추슬러 세울 힘도 잃어버린 미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구해주지 못했다.
"죽어, 그냥 같이 죽자... 죽어버리자...
죽자고 그래, 다 같이 죽어!!"
말이 튀어나간 순간,
마치 내 목소리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처럼 들렸다.
"죽자고 그래, 다 같이 죽어..."
그 말이 공기 중에 맴도는 동안
나는 이미 후회의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었다.
말끝이 사라지기도 전에
가슴 한가운데가 뜨겁게 타올라, 곧바로 서늘하게 식었다.
나는 무슨 말을,
도대체 어떤 말을 내뱉은 걸까.
기어이, 내가 있는 지옥으로 딸아이를 불러들였다.
아이 얼굴이 멍해지는 걸 본 순간,
내 안에서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분노 같은 건 이미 사라지고,
오직 참담함과 자기혐오만이 잔해처럼 남아 있었다.
다리가 힘을 잃었다.
버티려는 의지도 없이
그저 바닥이 내 몸을 받아주는 대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내가 한 짓이 그대로 머릿속을 내리꽂았다.
미친년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소중하다던 딸에게 그런 말과 표정을, 그런 행동을 했단 말인가.
스스로가 너무 역겨워 치가 떨렸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은...
그 어떤 순간에도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사실이 나를 가장 깊게 무너뜨렸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채
나는 바닥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고개를 떨군 채 있었다.
아이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서 멀어진 듯한 기분에
몸은 힘이 빠져 축 쳐졌고,
그대로 천천히 바닥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딸아이는 결국 나를 피해 다른 방으로 숨어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딸아이의 울음이 폭발하듯 이어졌다.
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끊임없이 "미안해.."를 되내며 흐느꼈다.
나는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고 싶었지만,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생각은 쉼 없이 굴러가는데,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미안해.'
그 한마디를 건네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아플까,
아니면 오히려 더 부서져버릴까.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이의 울음을 공허히 들을 수밖에.
울음소리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긁는 소리 같았다.
아이의 고통이 내 몸 안에 들어와
숨을 막아버리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끝없이 물었다.
어떤 엄마가 되어야 했을까.
어디까지가 나의 잘못이고,
어디서부터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운명일까.
지금 이 아이를 어떻게 구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어두운 방 안의 적막처럼,
내 안에서도 아무 대답을 켜지 못한 채
침묵만 길게 이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
내 숨소리,
흩어져 버린 감정들만 남았다.
단 하나 확실한 사실만
또렷하게 마음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것.
서로를 간절히 원했지만,
끝내 닿지 못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상실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분노와 좌절 사이를 표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