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 아래, 다시 살아나는 마음

우리를 어둠에서 건져 올리는 것들

by 한결


밤새 생각이라는 걸 해보려 기를 쓰고 있었다.

인정해야 했다.

지금의 나는 온전한 생각이 불가능하다는 걸.


애당초 온전이란 건 또 무엇인지.

무너진 마음 앞에서 온전이란 형식에 불과했다.

내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조차

판단되지 않는 밤이었다.


그러므로 인정할 수밖에.

수긍할 밖에.


움켜쥐고 있던 희망 섞인 미래를 내려놓고

그저 살아가야 했음을.

희망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욕심이었나.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은 예정된 듯 방 안을 밝혀오지만

휘몰아쳤던 어제의 감정들로 뒤척이고 있었다.


아이의 울부짖음과

내가 내뱉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한꺼번에 가슴팍으로 쏟아져 내렸다.


어쩌면, 죽음은 해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두려움으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어 쉬이 열어볼 수 없었다.

그 대가로 똑같은 삶을 반복하는 벌을 받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고 싶지 않았다.

행복을 꿈꾸는 것도 욕심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그렇게 될까 두려워

다시 행복해지고 싶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새벽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혀주기 시작했다.


거실로 걸어 나와
딸아이 방 앞에 멈춰 섰다.


문틈으로 작게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슬픈 멜로디를 들으니,
아이가 품고 잠들었을

힘겨운 감정들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저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이 작은 존재가 혼자 감당해 낸
긴 밤의 어둠이

그대로 음악에 묻어 있는 듯했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또다시 빌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신 그 어둠을 삼킬 수 있다면

부디 이 아이에게만은 닿지 않게 해 주소서.


작게 오르내리는 숨결 하나에도 목이 메었고,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복받치게 감사한 날들이었다.


깊은 속까지

빛나는 사랑이 스며들기를 바랐다.

그 사랑이 충만해

어떤 역경에도 의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존재만으로

가슴 저리도록 소중한 내 아이.


아이를 향한 이 마음이

나를 과거의 그때로 데려갔다.

딸아이를 품었을 때의 시절이

슬며시 떠올랐다.




유산의 위험으로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그저 배 위에 손만 올리고 있던 날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심장이 굳어버리는 듯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살려만 주신다면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고,
그저 살려만 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었다.

어떤 신에게 바라는 건지조차 몰랐지만,

그저 이 아이를 단 하루라도 더 품고 있을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었다.


아이가 내 안에서 버텨주기만을 바라며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웠던 날들이었다.


'부디 이 생명이
내 속에서 버텨낼 힘을 주옵소서.
아직 아무것도 못 해 준 이 아이를

내게서 빼앗지 말아 주소서.'


그렇게 애타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었다.


그때의 감정이

지금의 마음과 곁 쳐지며

다시 또렷하게 살아났다.


새벽빛 아래,
나는 오래 전의 나와 마주했다.
아이를 잃을까 두려워
매일을 기도하며 지켜내던 그 시절의 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마음으로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두려움과 떨림을
오래전에 놓아준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순간 다시 마주하고 있다.


그때의 절박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이 아이가
그 시절의 기도를 증명하듯
내 앞에서 고요히 숨 쉬고 있다.


정처 없이 무너져 내릴 것 같던 마음을

조용히 붙들어 보았다.

그건 결심이라 할 것도,

거창한 포부라 할 것도 아니었다.




나는 문턱에 서서

잠든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많이 울어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사춘기소녀는 이마에 여드름이 잔뜩 돋아 있지만

동글동글한 얼굴에 통통한 볼살이

내 눈엔 여전히 아기 같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이불속 숨겨져 있던 작은 손을 꺼내 어루만졌다.

아빠를 닮은 손톱 모양도

태어날 때부터 살짝 휘어졌던 새끼손가락도

하나하나가 애틋했다.


'이 작은 몸에 스며 있을 외로움을

어떻게 하면 달랠 수 있을까.'


그러나 애달퍼하지만은 않기로 했다.

이 아이가 겪어내야 할 험난한 길을

내가 다 대신 건너 줄 수는 없지만,

묵묵히 그 길을 함께 할 것이니까.


두렵지 않다는 건 아니다.

밝은 미래만을 보는 것도 아니다.

확실한 건,

우리는 서로를 어둠에서 구원할 것이다.


나는 아이의 손을 다시 이불속에 고이 넣어주었다.
그 작고 연약한 손이

나를 다시 붙들어주었다.


이 아이가 내일도 흔들릴지,
아직 다 건너지 못한 어둠이 또 찾아올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저 작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서 버티는 힘만큼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새벽의 희미한 빛이
내 마음 한쪽을 천천히 밝히고 있었다.


이 아이가 곁에 있는 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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