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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Sep 16. 2021

굴욕이 아닌 설렘의 3표.


그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아직도 혼자 자는 게 두렵다. 잠자리에 누우면 무서운 생각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아보지만 그때마다 도로 잠이 깬다. 어떤 때는 자려고 누웠다가 현관문으로 가서 이중 잠금을 다시 확인한다. 도둑이 들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큰 소리가 나면 저도 모르게 움츠려 든다.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데도 왠지 불똥이 튈 것만 같다.


그는 주목받는 것을 싫어한다. 언젠가 그가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누군가 “당신, 발이 참 크군요”라고 말하자 주변인들이 너도 나도 발 크기에 관한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때 그는 조용히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발 크기에 관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시발점이 자신이라면 그는 싫었다.


어느 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한 친구가 다가왔다. 친구는 그와 달랐다.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능청맞고 다소 시끄러운 경향이 있었다. 친구는 대뜸 그에게 말했다.

 

“ 너, 이번 선거에 출마해봐. 내가 도와줄게.”  

“ 에이~ 무슨, 난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 내가 볼 땐 니가 딱이야. 너만큼 책임감 있게 일할 사람이 없어 내가 밀어 줄테니까 나가봐”

“ 나간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귀찮아”  

“ 나, 아는 사람 굉장히 많은 거 알지? 너 선거 유세는 내가 책임지고 할게”


요즘 떠들썩한 선거이야기였다. 왜였을까? 평소라면 흘려버렸을  이야기인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추켜세워 주는 친구의 목소리가 왠지 시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요샛말로 인싸로 불리는 친구였다. 어쩌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말은 잘라도 잘라도 쑥쑥 자라는 대나무처럼 마음속에서 자꾸만 자라났다.


그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뒤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된 연유에 대해선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말로는 싫다고 했지만 실은 리더를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권력에 대한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권한으로 바꾸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됐건 그는 선거에 나갔다. 그리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가 받은 득표수는 3표였다. 자신이 찍은 표를 제하면 정확히 2표가 더 맞는 표현이다


이 가엾고 불쌍한 영생, 5학년 내 아들 이야기다. 이야기의 끝은 막장보다 더 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소한 6명을 모아 오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던 친구는 연신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미안하다는 뜻이 6명을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진실은 그 친구 역시도 그를 뽑지 않았던 것이다


바람이나 넣지 말지... 3표를 받은 아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뻘쭘함을 어떻게 견뎠을까? 어렵게  용기에 무안이 끼얹어졌을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아도 절로 연상되는  잔상 때문에 엄마인  가슴은 찢어졌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본인도 아프겠지만 발등에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도 만만치 않았다.


부모란 사람은 대체로 자식의 불행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연습이라도 시킬걸 그랬나? 옷이라도 말끔히 입혀 보낼걸, 편의점에서 만난 반 친구들에게 음료라도 사줄걸 그랬나... 자책이 마음을 때렸다.  


그런데 아이의 상처가 깊을 거란 생각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의 회복 속도는 LTE급이었다. 게다가 굴욕의 상처를 기대감으로 변환하는 능력까지 선보였다. 친구의 배신은 진즉에 잊고 자신을 뽑은 나머지 둘의 존재를 궁금해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누구일까?''남자일까? 여자일까?''그래도 나를 믿어 주는 두 명이  5학년 6반 안에 존재한단 말이지!  엄마는 누구일 것 같아?''그 애려나? 아님 다른 애?'


고작 두 명이 아니라, 그래도 두 명이라는 데 방점을 두었다. 복잡하자면 얼마든지 복잡하게 우울할 수 있는 일인데 아이는 우울을 깔끔이 매듭짓고 새로운 설렘을 직조해나갔다. 나는 사십 년을 넘게 살았어도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이토록 가뿐하게 도전하고 실패하고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법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 아이는 겁보가 아닐지도 모른다. 쫄보가 아닐지도 모른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부모는 자식을 모른다. 3 표를 받고도 설렐 수 있는 마음. 이 초인적인 마음을 발휘한 아이가 너무나 위대해 보였다. 굴욕의 3표라고 생각한 마음이 미안해졌다. 나는 용감한 출마자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런데, 두 표는 정말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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