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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Sep 20. 2021

유튜브 보라고 권하는 엄마, 바로 접니다.


'홍진경의 공부왕 찐천재' 유튜브 채널. ⓒ 공부왕 찐천재


연예인들의 유튜브 진출은 이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됐다. 대중의 인기와 인지도 덕분에 일단 개설만 하면 일정 구독자수와 뷰수를 보장받는다. 그것이 곧 수익으로 직결되니 연예인들이 유튜브라는 황금 노다지를 그냥 둘 리 없다.


요즘은 방송보다 유튜브에 더 힘을 쏟는 연예인들도 많다. 방송보다 제약이 덜하고 시스템적으로도 간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캐릭터를 살린 채널을 오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사이에서 노선을 달리한 연예인의 콘텐츠가 있다. 바로 '홍진경의 공부왕 찐천재'다. 연예인들의 사사로운 브이로그 혹은 캐릭터 쇼가 아니라 '공부'라는, 듣기만 해도 지루한 콘셉트를 홍진경은 선택했다.


공부 이야기! 과연 누가 보고 싶어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는 감 없는 나의 한낱 기우였을 뿐. 홍진경의 공부왕 찐천재는 지금까지 80만이 넘는 구독자수를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헛다리 짚은 나 역시 '만재(구독자 애칭)'를 자처하는 애청자가 됐다.

'홍진경의 공부왕 찐천재' 유튜브 채널. ⓒ 공부왕 찐천재


공부왕 찐천재를 챙겨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원초적 감정인 "내 애가 공부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 채널에 녹아있고, 그로 인한 공감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자식의 공부를 봐주다 한계점을 느낀 엄마가 직접 배워서 알려주겠다는 포부로 시작된 이 콘텐츠는 유튜브 썸네일만 봐도 공감지수 100%이다.


'딸과 공부하다 목이 메이는 홍진경', '공부하는 대신 엄마에게 조건 제시하는 홍진경 딸', '공부보다 돈이 좋다는 딸을 위해 홍진경이 내린 특단의 조치' 같은 제목은 우리 집 아이와 나의 관계를 그대로 옮겨놓았나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자식 공부시키기가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심리적 위안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유튜브 좀 그만 보라는 말은 많이 했어도 유튜브 같이 보자는 말은 공부왕 찐천재를 보며 처음 하게 됐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저들끼리 떠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 내용들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나경원, 전현무 등 각계 유명인들이 출연해 일차 방정식과 삼각 함수의 개념을 알려주고, 문학적 해석법을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준다. 또 강남 일대를 드라이브하며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구독자와 실전 모의고사를 함께 치른다. 엄마로서 효용 가치가 상당히 높은 콘텐츠인 것이다.


한때 나도 공부 좀 지지리 안 해 본 사람으로서 딸 라엘의 심정도 너무나 이해가 가고, 딸과 함께 공부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으나 공부 준비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는 홍진경의 마음도 백번 이해한다. 두 모녀의 허당기 있고, 친밀감 있는 캐릭터가 이 콘텐츠의 성공 여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의 경우, 공부 콘텐츠로서 뿐만 아니라 10대 아이들의 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기도 한다. 홍진경의 딸, 라엘은 12살로 우리 집 큰 아이와 나이가 같다. 라엘의 행동과 말, 노는 방식, 교우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세대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얼마 전 라엘의 남자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개됐는데 말로만 듣던 초등학생의 이성교제에 관한 실제 모습과 내밀한 심정을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딸의 의견을 존중하고, 헤어졌다는 딸을 위로하는 엄마로서의 홍진경의 모습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딸 라엘은 엄마의 복장을 뒤집기도 하고, 팩폭을 날리기도 하며, 공부하기 싫어서 뺀질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 대 소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 비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봐 온 예쁜 옷을 입고 다재다능한 끼를 선보이며 넓고 새하얀 집에 사는 연예인 엄마와 그 자녀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것 또한 콘텐츠의 진정성을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홍진경의 공부왕 찐천재' 유튜브 채널. ⓒ 공부왕 찐천재


재미와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있는 집 자녀의 사교육 대장정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시 금수저 2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일반 계층의 나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섭외를 통해서 유명 인사들을 초빙하고 공부의 개념을 익혀나간다는 식의 구성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방송이 아니라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 막대한 인맥과 돈을 들여 자녀의 지식 영역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단 사실에 괴리감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콘텐츠가 희망적인 이유는 공부가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공부 이야기를 하는데 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와 싸우지 않고 공부 얘길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공부왕 찐천재!


공부 공백이 커지는 추석 연휴, 아이와 공부를 하니 마니 뾰족하게 실랑이하기보다 공부왕 찐천재를 함께 보며 둥글둥글하게 공부 공백을 메워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둥글둥글한 달이 떠오르는 한가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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