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83개국 1위 대기록!'
'전 세계가 주목한 K-콘텐츠!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전 세계 8200만 시청! 신기록 달성'
연일 뉴스 메인을 장식하며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다. 최근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고는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화제를 끌고 있다.
나 역시 오래전 해지했던 넷플릭스를 순전히 <오징어 게임>을 보기 위해 재가입했다. 호기심에 시청을 했는데 보는 내내 참혹하고 슬프고 무서운 감정이 일었다. 현 세태를 잔인한 게임으로 풍자한 스토리는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 넷플릭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어른인 나도 보고 나서 힘들었던 <오징어 게임>을 미취학 아동, 초등학생들이 시청을 하고, 그에 따른 문화를 양산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경위로 어린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을 보게 됐고, 주된 내용들을 따라하며 당당하게 자랑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맘 카페에선 '<오징어 게임> 아이들과 같이 봐도 될까요?' 같은 게시글들이 종종 눈에 띄기도 했다. 버젓이 19금이라고 붙여진 콘텐츠를 아이들이 볼 수 있냐고 묻는 어른들에게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예고 영상에 나오는 총으로 쏴서 죽이는 장면 외에도 아이가 소화하기 힘든 19금 장면과 장기 거래에 관한 끔찍한 장면들이 수차례 반복되는데, 나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절대 시청하시면 안돼요' 라는 댓글만 남기고 퇴장했다.
아이들의 콘텐츠 단속이 어려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튜브와 OTT의 발달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들이 여과기 없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다. 그 안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도 포함이다. 이에 대한 제도적 규정이 없는 것에 대한 우려와 지적을 여러 번 표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도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시점에, 부모들이 먼저 청불 콘텐츠를 허용하고, 보호자와 함께 시청하면 상관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나도 혼란스러웠다.
아이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 교육에 대한 필요성은 그동안 많이 언급됐지만, 시청 지도자인 부모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가정별 교육관에 기대고 있어 더욱 위험해 보인다. 교육 가치관에 따라 어느 집은 되고, 어느 집은 안 되는 식으로 기준이 제각각이다. 친구 집은 보여주던데 왜 우리 집은 안 되냐고 졸라서 떠밀려 보게 되는 경우도 더러 생기기 마련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방송사의 19금과 OTT 플랫폼의 19금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OTT 플랫폼 제작물들은 방송사보다 심의 기준이 관대하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방송에선 다루기 힘든 다양한 장르의 시도와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자극적이고 수위 높은 영상물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에도 성인 인증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넷플릭스 키즈와 연동돼 있어 아이들이 손쉽게 드나들 수 있다. 또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유튜브와 틱톡 같은 매체를 통해 주요 장면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 유튜브에서 오징어게임이라고 검색한 결과. ⓒ 유튜브 화면 캡처
우리 아이들에게도 <오징어 게임>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많이 오가는 얘기라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초등학생들이 즐겨하는 게임, 로블록스에 진짜 <오징어 게임>이 출시됐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게 됐다.
녹색 운동복을 입은 캐릭터들이 드라마 속 게임을 하고, 실패하면 총살을 당하는 구조로 드라마와 비슷하게 구현돼 있다. 청불 콘텐츠가 동심의 세계까지 깊숙이 침투한 모습,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참 참담하고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 로블록스 게임 어플에서 실존하는 오징어 게임 캐릭터, 배경, 소리까지, 실제 드라마 영상과
똑같이 구현되고 있는 로블록스 게임 ⓒ 게임 어플 화면 캡처
부모 입장에선 이것을 보여줘야 하나, 말아야 하는 혼란에 빠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이랑 말이 통하려면 볼 수밖에 없어', '눈가리고 아웅이지. 몰래 보게 하느니 차라리 그냥 다 보여주자'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성교육 전문가 심에스더(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저자)씨는 말한다.
"성인 콘텐츠물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상황 전개가 많은데 아이들은 그 상황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잘못된 성관념과 선입견을 가질 수 있어요. 당장은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심리 불안과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자극적인 콘텐츠 내용물을 100%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것도 이해가 되요.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가 봤거나, 같이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양육자가 그 영상을 충분히 숙지한 뒤 동반 시청의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함께 봐도 좋겠다라고 판단이 들면, 극 전개에 대한 부연 설명을 아이들에게 해주시는 게 좋아요. 또 영상 시청 후에는 대화를 통해 아이와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는 부모를 위한 팁으로 심씨는 "이 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니? 현실과는 어떻게 다른 것 같아?라는 질문을 통해, 영상을 시청한 후 느끼는 아이의 감정을 면밀히 들여다 봐야 해요. 또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로 콘텐츠 이용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중요한 것은 미디어 심의기준에 맞게 설정된 연령 제한을 따라 시청 지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일일 것이다. 하나마나 한 말처럼 당연한 이 말이 현재로선 쉽지 않으니 위 내용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 인기를 얻고, 그에 따른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팡파르를 울리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