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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Feb 07. 2022

명절에 밥 푸는 며느리입니다. 제 1순위는요

결혼 16년 차. 이젠 명절이 두렵지 않다. 한때는 나도 명절을 전후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예민함으로 괴로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오랜 시간과 숙련된 경험치로 이젠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내공을 갖게 됐다.


두려움이 편안함으로 바뀔 수 있었던 건 피 터지는 투쟁이 아니라 적당한 타협과 이해였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몸을 던져 상대를 설득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라는 인간은 그런 배포도 용기도 없는 대한민국 평범한 K-며느리, K-장녀이기 때문에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명절 나기를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가족 문화를 수긍하는 것이었다. 서로의 가족을 비난하고 나만 피해를 본다고 생각을 하면 그건 순전히 내 손해일 뿐. 그렇게 손해를 보는 명절들을 숱하게 보내고 나서야 나는 겨우 나만의 방식으로 명절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분히 남아 있는 남성 우월 사상과 여자들의 노동력에 당연하게 기대는 명절 문화는 여전히 나를 분노케 한다. 하지만 이를 대처하는 나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속으로 부글부글 분노를 삭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쏘아붙였다면, 이제는 "아버님~ 가족이 다 같이 음식 준비하면 조상님도 좋아하실 거예요~"라며 호호 거리며 말할 줄도 알게 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웃세대의 여성들, 가깝게는 나의 엄마나 시어머니의 경우는 외려 이런 호호 작전이 먹히지 않는다. '호호' 하고 던지면 '아무리 그래도'라며 도로 튕겨내 버리곤 했다.


게다가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그것이 마땅한 여자의 도리라고 나에게 가르치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따져도 보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그녀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픽사베이

그중 내가 가장 발끈하는 것은 밥 푸는 순서인데, 이것 때문에 나는 매번 빈정이 상하고 만다. 식사 때, 온 가족이 모이면 주로 엄마와 시어머니가 음식을 준비를 하고 나는 밥을 푸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밥 푸는 순서 때문에 여러 번 혼이 났었다.


밥이야 발로 푸든, 손으로 푸든, 앞으로 푸든, 뒤로 푸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해 왔는데, 시어머니와 엄마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물론 예의를 갖춰 어른들 밥을 먼저 푸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다음 순서에 대해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시댁에서 아버님과 어머님 밥을 푼 다음, 그다음 순서로 손이 가장 빨리 닿는 밥그릇에 밥을 푸려고 하자 어머님은 나를 제지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네 남편 거부터 푸고, 우리 손주 거 푸고... " 그다음은 줄임말이었지만 아마 내 딸, 제일 마지막에 내 밥을 푸라는 얘기였을 것이다.


친정 엄마는 대놓고 나무랐다. "야는 정신이 있나? 아빠 밥 먼저 푸고 다음에 백 서방, 그다음에 애들 순으로 퍼야지." 시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순서가 꼴찌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 밥 다음 순서로 엄마가 있다. 몇 명의 친인척들이 모이든, 늘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엄마였다.


한 번은 대식구가 먹을 밥 양을 잘 못 맞춰서 순서대로 밥을 푸고 나니 밥이 모자랐던 적이 있었다. 결국 엄마와 나만 찬밥을 먹었는데 그 순간 서러움이 왈칵 치밀었다. "나도 뜨신 밥 먹고 싶다고! 밥상 차리느라 고생한 건 엄마와 난데, 왜 다른 사람만 뜨신 밥 먹냐고!!!" 하며 따지자 엄마는 "다 그런 거다"라는 말 한 마디로 무마시켰다.


밥 푸는 순서는 한 마디로 집안의 서열이다. 그 서열은 누가 정한 것이고 왜 강요당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자꾸만 부아가 치밀었다. 서열을 뒤엎을 반란을 꾀할 것인가? 아니면 조곤조곤 엄마를 설득시킬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른이 시키는 대로 그냥 따르고 말 것인가?


나는 세 가지의 방식 모두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의 소심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비밀리에 밥 푸는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어머니와 엄마가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내 임의로 밥 푸는 순서를 후다닥 바꾸면 된다. 순서쯤이야, 뭐를 먼저 푸든 티가 나는 것이 아니므로 완벽 범죄가 가능하다. 지금까지 들킨 적이 없으니 성공률 100%라고 장담할 수 있다.


픽사베이 


바꾼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명절에는 시어머니가 가장 고생을 하시므로, 시어머니 밥을 가장 먼저 푼다. 그다음은 아버님, 그다음엔 내가 고생을 하므로 내 밥, 다음은 남편 순이다. 아이들은 그냥 되는 대로 푸고 만다.


친정에서는 한평생 제일 마지막 순서의 밥을 먹었을 엄마를 위해 무조건 엄마 밥부터 푼다. 혹시라도 들킨다면 엄마가 기겁하겠지만 알 게 뭔가? 난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고, 들킨다 한들 고작 내가 푸는 밥은 명절이나 가족 행사를 다 합쳐 고작해야 대여섯 차례뿐인 것을.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시어머니나 엄마는 시아버지와 아빠의 다음 순서로 밥을 푸고, 혹 밥이 모자라면 냉동고에 얼린 밥으로 끼니를 때울 것이다. 아마 남은 평생 동안에도 이 패턴은 절대 변하지 않으리란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들을 대우해주고 싶었다. 한평생 안팎으로 설움이 많았을 그녀들에게... 그 설움이 굳은살처럼 딱딱하게 굳어 아무렇지 않게 된 그녀들에게... 항상 가장 밑바닥의 밥을 먹어야 했을 그녀들에게... 밥솥을 열었을 때 가장 찰기가 흐르는, 가장 윗부분의 밥을 움푹 퍼서 첫 순서로 밥그릇에 담고 그녀들이 앉은자리에 올려놓는 것으로 그녀들을 위하고 싶다.


밥상이 다 세팅되고 나서도 그녀들은 한참을 허둥대며 뒤늦게 밥상에 앉는다. 밥상에 앉아서도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밥보다 밥상 상황을 살피느라 분주하다. 부족한 찬은 없는지, 밥이 모자라진 않는지... 천천히 밥을 먹을 여유따윈 없어 보인다.


그런 그녀들 앞에 놓여진 밥은 내가 첫번 째로 푼 밥이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다. 명절이 괜시리 통쾌해진다. 한 상 가득 조상님의 제사상을 차린 것보다, 큰 절을 하며 명절 인사를 건네는 것보다, 내심 더 뿌듯하고 보람된다. 나의 소심한 명절 복수극! 아마 이번 설에도 계속될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은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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