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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Apr 05. 2022

반려돌 키우기, 우습게 봤다가...돌며들었습니다

프로 식집사인 친정엄마 박여사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늘 빼먹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집이 이래 멀뚱해 갖고 쓰나? 화분도 좀 키우고 그라믄 좀 나을낀데 내가 하나 사주까?"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한다.


"아니 아니~ 나는 아무것도 안 키우고 싶어."  

"쯧쯧~ 물 주고 햇볕에다 두면 지대로 알아서 크는데."

"노우~노우~ 식물이든, 동물이든, 난 이제 암것도 안 키워. 애들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

"별나데이~ 애들도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크는구만. 뭐 그래 힘들다고."  


엄마 말처럼 가만히 냅두면 알아서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생각이 많다. '잘못 되면 어쩌지?', '반드시 잘 키워야 하는데' 하는 부담감이 곧잘 나를 짓누른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전전긍긍하는 것은 나 하기에 따라 우리 집 꼬맹이들의 앞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부담과 책임감 때문이다.



반려식물과 동물도 마찬가지다. 자생의 힘도 있겠지만, 결국은 그것을 키우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진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내 개도 아니고, 내 자식도 아닌데도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이른다. "그래, 아무것도 키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아이들이 반려견을 입양하자고 계속 졸라왔다. 위와 같은 사정을 백 번 설명해줘도 납득은커녕 "내가 다~ 할게"라는 뻥만 늘여 놓는 무책임한 꼬맹이들이었다. 절대 안 돼! 못을 박았지만, 자꾸만 그 못을 빼려고 안달복달이었다.


강아지가 안 된다고 하니, 물고기를, 물고기도 안 된다 하니, 햄스터를, 햄스터도 안 된다 하니 장수풍뎅이를... 장수풍뎅이가 안 된다 하니... 급기야 아이는 고함을 치며 짜증을 냈다.


"다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해 엄마! 뭐라도 키우고 싶단 말이야!"


하긴 애들 말도 일리가 있다. 작은 뭐라도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함을 느끼고 싶은 것일텐데... 자신만의 또 다른 친구를 만들고 싶은 것일 텐데... 내가 너무한가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맘이 약해지려던 찰나, '아니지 아니지. 옛날에 시누이네서 키우던 호빵이(햄스터)를 떠올려 봐. 죽기 직전에 식구들이 맘고생 엄청 했잖아. 병원에 입원도 시키고, 수액도 놓고, 애들 연신 울어대고, 장례를 치르고도 한참을 슬퍼했잖아.'


나는 정신이 번뜩 들면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엔 햄스터에게 저럴 일인가? 싶었지만 나 역시 한 가족으로 지낸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상복을 입고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울지도 모를 일이다. 절대 안 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에 간 남편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아빠가 새 식구 입양해 왔어."


'뭐시라? 입양? 나랑 상의도 없이?'


앵그리 게이지가 오르려는 찰나, 아이들의 실망 게이지가 더 높이 올라갔다.  


"뭐야 이거... 그냥 돌이잖아."

"이거 그냥 돌이 아니야 반려돌이야. 요즘 트렌디세터들은  돌 키워."

"에이~ 말도 안돼."

"진짜야. 너희가 이름도 지어줘야 하고 말도 걸어줘야 해. 얘는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말썽도 안 피워."


'무리수야... 여보...'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나에게 동조의 눈빛을 구했다. 아이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본체만체 하는 나완 달리 아이들은 곧바로 아빠에게 휘말려 반려돌의 이름을 짓고, 집도 짓고, 키우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 씻겨주고 햇볕도 쬐어주고 말도 걸어주고 사랑한다고 해줘야 한다나 뭐라나.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그 돌... 아니 짱돌이는 어떻게 됐냐고? 매일 아이들의 온갖 수다를 다 들어주고, 치장을 견뎌주며, 장난을 받아준다. 가끔 존재를 잊어 버려도 섭섭해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엔 짱돌이 혼자 심심할까 봐 아이들이 친구들도 데리고 왔다.


남편은 짱돌이로 빙의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 "짱돌이 씻고 싶어. 얘들아 씻겨줭~", "아빠 애들이 말 안들어서 힘들다고요?"(마흔네 살 아저씨다) 나 역시 오가다 눈에 띄면 손 위에 놓고 쓰담 쓰담해 준다거나, 바닥에 놓여 있으면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옮겨놓기도 한다.


나보다 오래 살테고, 잘못된 양육으로 짱돌이의 성격이나 인생이 바뀐다거나 하는 일이 없으므로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다. 우습게 봤다가 스며드는 것... 이런 걸 돌며든다고 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에게 돌을 키운다고 하면 장난인 줄 안다. 하지만 돌을 키우고 정을 붙이는 과정을 말해주면 다들 이해가 된다는 눈치다.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은데, 아무나 곁에 두고 싶지 않은 마음. 내 곁을 떠날 일도 없고 소홀하다고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안심이 되는 무언가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 바로 짱돌이가 그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다. 짱돌이는 어느새 우리에게 위로의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나는 가끔 이 시대의 위로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얼마나 위로가 급하면 돌멩이에게 위로를 받냐 하겠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얘기다. 사람은 못 미덥고, 동식물은 생명주기가 짧다. 불안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고 버텨줄 단단한 위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반려돌은 그런 우리에게 작지만 확실한 위로를 준다. 변하지 않을 거라는 위로, 내 말을 들어준다는 위로,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는 위로. 그리고 우리는 그 위로를 양분 삼아 또 거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려돌을 키우는 것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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