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초대 장소가 집이 아닌 대형 쇼핑몰이었다. '그래, 집에서 생일상 차리기 힘들지... 쇼핑몰 안에 있는 식당에서 생일파티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모임 장소는 인생의 네 컷을 찍어 준다는 즉석 사진관 앞이었다.
듣자 하니 요즘 초등 여자아이들의 '핫플'이 바로 이곳이란다. 생일 주인공이 부모님에게 '친구들과 인생의 네 컷 찍기'를 요구해서 여기서 사진을 찍은 뒤 홈 파티를 하는 코스로 정했다고 한다.
양 갈래 머리에 플레어스커트. 자기들끼리 나름의 드레스 코드도 맞추고, 사진 포즈도 몇 날 며칠을 구상했다. 10대 소녀들은 생일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무척 설레어했다.
딸은 사촌언니와 몇 번 찍어본 경험이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처음이라고 했다. 친한 언니의 경험담, 유튜버들의 브이로그에서 길거리 즉석 사진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아이들은 저마다의 환상과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딸아이는 전용 앨범까지 따로 구입했을 정도다.
이 즉석 사진의 인기는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딸과 쇼핑을 갔다가 하도 조르는 통에 나도 같이 찍어본 적이 있는데, 그 안엔 젊은 세대들이 그득했다. 대학생, 군인, 연인 등... 각종 소품을 활용해 즐겁게 추억을 남기는 모습을 보니 '이 장면, 어디서 봤는데...'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곧이어 떠오른 장면! 과거에 친구와 연인과 한 번씩은 찍어봤을 스티커 사진관이 오버랩 되었다.
푸웁, 하고 웃음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셀카 본성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의문도 들었다. 사진이라는 것이 요즘 세대들에게 얼마나 흔하고 뻔한 아이템인데 왜 즉석 사진에 목을 매는 것일까?
핸드폰 어플로도 충분히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데 말이다. 왜 돈을 들이고, 찾아가는 수고스러움을 감행하면서까지 즉석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일까? 동네 일반 사진관은 죄다 없어졌는데, 길거리 즉석 사진관만 잘 되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 길거리 즉석 사진 전용 앨범 이 안에 아이의 소중한 추억들이 담겨져 있다.
우리 때는 핸드폰의 화질이나 사진 어플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눈도 키우고, 코도 세우고, 몸매도 보정하고 전신 성형이 가능하다. 이런 와중에 길거리 즉석사진이 유행이라니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 트렌드세터 딸(11)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엄마, 핸드폰 속 사진은 보기만 할 뿐 만질 수가 없잖아. 이 사진은 바로 출력이 되고, 소장할 수 있어서 좋아."
"핸드폰 사진도 인화되는데.... "
"수십 장 씩 뽑을 수 있는 거랑 세장만 뽑을 수 있는 거랑 어느 게 더 소중하겠어?"
"아... 희소성!"
"그리고, 아이들이랑 포즈도 연습하고, 스타일도 의논하면서 사진을 찍으러 가면 더 추억에 남고 특별하잖아."
아이의 말인즉, 물성으로 소유할 수 있고 세 장뿐이라는 희소성,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거기에 내가 체험해 본 바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
사진 프레임이 파스텔 톤에다 피부가 뽀샤시 하게 나오는 게 40대인 내가 찍어도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20대처럼 나온다. 그것은 여심을 제대로 읽었다는 뜻일 것이다(집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았다). 실제로 주고객층이 젊은 여성들이다.
세상이 점차 로봇화 되고, 메타버스니 뭐니 하는 상황에서 비현실적이고 기계적인 마인드가 주된 감성일 줄 알았던 요즘 세대들도 친구와의 놀이, 추억, 인화사진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키우고 있다니... 나는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시종일관 "대체 왜 저래?"를 입에 달고 살고, 아이는 "엄만 말해도 몰라"라고 하며 마음의 교집합을 영영 찾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의 요구에 마지못해 찍으러 갔지만 즉석 사진관 부스 안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나도 한때 스티커 사진 꽤 찍어본 여자다). 10대 딸과 40대 엄마가 함께 앙증맞은 머리띠를 쓰고 사진을 찰칵! 하는 그 순간, 우린 정말 오랜만에 한마음이 되었다.
"엄마, 이 포즈 해 봐."
"이렇게? 여기서 손가락 하트를 할까?"
"응, 좋아. 이 사진 잘 나온 것 같아. 엄마 이걸로 뽑을까?"
"오오~ 이건 정말 평생 소장각!이다."
인생 사진도 건지고, 잃어버린 대화도 건지고, 추억도 건질 수 있는 곳. 2022년 길거리 즉석 사진관의 인기, 이거 나는 대환영이다.
*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 / 최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