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G Jul 12. 2022

박막례 할머니, 저는 아직 구독 취소는 아닙니다만.

위인전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진짜로 나라를 구한 업적이라든지, 뜨거운 애국심으로 국위 선양했다던지 하는 이야기들은 내겐 너무 먼 이야기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행적들을 볼수록 나는 삐뚤어진 마음으로 '인간미가 없네' '성격이 이상하지 않을까?' '남모르는 콤플렉스가 있었을지도 몰라' 같은 흠을 찾기도 했다(위인님들 죄송합니다).


이 분의 이야기는 어떤 위인전 보다 감명 깊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만큼 눈물겨운 인생을 사셨지만 자신만의 호쾌함으로 인생 역전을 만들어 낸 한 여성의 이야기. '남의 장단에 맞추지 말고 자기 장단에 맞춰서 살라'고 말하며 주체적인 노년을 보내고 계신 박막례 할머니 이야기다. 
                                                     

▲  출처_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캡처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을 찾다가 우연찮게 박막례 할머니 에세이집을 발견했다. 글이 어렵지 않고 살아있는 역사책이라 생각하며 아이들을 옆구리에 끼고 읽어주었다. 읽다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아이들에게 안겨 '꺼이꺼이' 운 적도 있다.


영문 모르는 아이들은 의아해하며 나를 달랬지만, 나는 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할머니가 가여워서 인생이 너무 불공평해서 화가 났는데 나중엔 외려 그 몹쓸 인생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낸 할머니에게 반해버렸다. 그리고 느지막이 쨍하고 해 뜬 할머니의 후반부 인생에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


나는 곧이어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의 열혈 구독자가 되었다. 할머니가 알려준 레시피로 만든 간장 비빔국수는 우리 집의 최애 메뉴로 등극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할머니를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할머니 구독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1일까지 136만 명이던 구독자 수가 7일로 131만 명으로 무려 5만 명이 구독 이탈을 한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리나케 찾아봤다. 할머니를 촬영하고 인기스타로 만들어낸 영상 제작자이자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인 김유라 PD, 정확히 말하면 김유라 PD의 예비 신랑과 관련된 일 때문이었다.


김유라 PD의 예비 신랑이 과거 자신의 SNS에 여자 아이돌의 노출 사진을 올리고 성희롱 발언을 한 것과 선정적인 일러스트 티셔츠를 판매한 이력 등이 논란으로 점화됐다.


논란이 일자 김유라 PD는 SNS에 "예비 신랑의 8년 전 작업물과 그 시기 즈음 올렸던 포스팅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부분을 감싸려는 것은 아니다...(중략) 지금은 절대 그런 작업물을 만들거나 포스팅을 생각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저는 그런 시대가 지나고 만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이 그런 이미지만으로 판단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만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상당수의 구독자들이 박막례 유튜브 댓글을 통해 박막례 할머니에게 "할머니 행복하세요"라거나 "할머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등 감사의 인사를 남기면서 구독 취소를 알렸다. 이거 참,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Korea Grandma'(박막례 유튜브 채널의 이름)의 주 구독자는 2030 여성들이다. 여성 차별과 혐오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세대다. 그런 그들에겐 해당 채널의 연출자, 김유라 PD의 예비 신랑 과거 행적은 용납하기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또 방송작가로 오랫동안 일해온 경험에 의하면 영상 촬영자의 가치관과 사고에 따라 아이템 선정, 편집 방향에 상당한 영향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런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 문제가 될 법도 하다. 


우리가 박막례 할머니에게 빠진 것은 고령에도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과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이다 입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해당 채널에서 할머니의 입장은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가족에 관한 얘기라 민감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좋아한 박막례 할머니는 민감하다고 피해가는 타입이 아니다. 


할머니의 기존 캐릭터처럼, 손녀 사위에 대한 입장이든, 팬들에 대한 입장이든, 속 시원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맹점은 쏙 빼고 현재 할머니의 음식 사업 관련 영상만 업로드되고 있는 것은 오랜 팬인 나도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할머니의 돌직구 한 방이면 이탈한 구독자도 돌아올 것 같은데 말이다. 


이쯤해서 박막례 할머니의 또 다른 팬들의 입장은 어떨지 궁금했다. 남편은 중립이었고, 13살 아들은 단호하게 구독 취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그래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영상을 만들 때 정신 바짝 차릴 것이라고 한다. '오~ 일리 있네?' 그리고 11살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우리도 잘못하면 엄마가 한 번은 봐주잖아. 한 번은 실수지만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고 말이야. 그 아저씨도 이번 한 번은 봐주고, 또 같은 실수를 하면 그땐 가족으로서 혼내지 않은 할머니 잘못도 쪼금은 있을 테니까 그때 구독 취소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 떠난 구독자를 위해서가 아닌, 남은 구독자를 위해 유라 PD가 증명해 보여야 할 차례다. 어쩌면 앞으로 더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일수도 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_최은경

작가의 이전글 기분에 지지 않는 나의 필살기! 편의점 캔맥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