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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ul 21. 2020

마흔한 살 주부의 자취방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나이  

      

“엄마 자취방에 들어올 때는 미리 노크를 해야지 ”     


내가 좀 매몰차게 말했나? 딸아이는 으앙 하고 제 아빠한테 이르러 간다.      


“아빠, 엄마가 자치방에 오지 말래 근데 자치방이 뭐야?”

“엄마만의 방이라는 뜻이야. 엄마 방해하지 말고 아빠랑 놀자. 저 방은 들어가지 말고. 응?”      


울음이 길어지면 어쩌나 했는데 아이는 금세 마음이 풀어져 아빠랑 까르르하고 잘 논다.  


거실에서 여섯 발자국쯤 떨어진 곳, 현관 중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방,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여기가 바로 딸 아이가 궁금해하는 나의 자취방이다. 침대, 책상, 노트북, 전자피아노가 전부인 단출한 살림이지만 자취방으로 손색이 없다.


얼마 전 나는 아들 방을 ‘내 자취방’으로 규정했다.


우리 집은 판상형 구조에 방 세 개짜리 아파트다. 이 집을 구할 때 아들과 딸에게 방 하나씩 주고 큰 방을 부부 침실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자의 성별에 맞게 아이들 방을 꾸며주었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아이들에겐 ‘자기만의 방’ 보다는 ‘엄마의 품’ 이 더 필요한 나이라는 것을.


특히 아들 녀석은 자신의 방과 안방이 너무 멀다며 무섭다고 아예 들어가지조차 않았다. 누가 보면 우리 집이 수백 평은 되는 줄 알겠지만...(30평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놀고 있던 아들 방을 내 자취방으로 하기로 했다. 월세는 아이들 끼니와 숙제 봐주는 것으로 퉁친다.


난생처음 방을 가져본 아이처럼 설레하며 좋아하는 디퓨저와 스피커도 들여 놓았다. 그냥 방도 아니고 자취방이라고 한 것은 그간 육아를 하면서 늘 읊조려왔던 내 로망이 바로 자취방이었기 때문이다.


온종일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아이들을 피해 도망갈 곳이라곤 집 앞 커피숍 정도가 전부였던 내게 자취방은 꿈의 공간이었다. 더군다나 가족들이 수시로 오가는 주방 식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힘든 상황. 남편이 필요한 걸 말하라고 할 때마다 농담처럼 '자취할래’ ‘자취방 구해줘’라고 했던 말에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자취방이라는 호칭을 붙힌 건 결혼전 자취생활에 대한 추억도 한 몫했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친척 집에 얹혀살다 자취를 시작했다. 홍대 다세대 주택부터, 신길동 반지하, 신정동 옥탑방까지. 번듯한 집은 하나도 없었다. 죄다 낡고 허름한 곳이었다. 그래도 서울 안에 내 한 몸 편히 쉴 곳이 있다는 게 어찌나 든든하던지, 도시로 상경한 시골뜨기에겐 그마저도 감사했다.     


자취방에서 나는 참 많은 꿈을 꾸었다. ‘대작가가 돼야지, 부자가 돼야지, 좋은 남자를 만나야지, 좋은 집에 살아야지.’ 그때의 그 자취방에서 내가 넘본 꿈을 누군가는 허황되다 했고, 누군가는 비웃었다. 그래도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막막한 현실에도 난 덤벼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젊음이라는 마약은 그런 것이지 않은가.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자취방보다 더 넓고 큰 자기집을 가지고 나면 그간의 꿈들은 죄다 잊어버리고 그냥 중년사람이 돼버린다. 주택담보대출이 아니라 청춘담보대출로 이름을 바꿔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사실 젊음과 안 젊음의 차이라기보다 꿈을 꿀 수 있는 자신만의 동굴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이 갖게 된 큰 집은 아이들의 집, 부부의 집, 은행의 집이지 오롯이 나를 위한 집은 아니니까 말이다.     


특히 주부라는이름을 달고나면 그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 이름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부부 침실’ ‘남편 서재’ ‘아들 방’ ‘딸 방’ 그중에 아내 방이라는 이름은 왜 없는 걸까? 내가 그간 꿈을 다 못 이룬 것은 바로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몰아가고 싶다.  


20세기 여성 버지니아 울프도 진즉에 외쳐 댔다.      


여자가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한테 제시하는 것 뿐입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그 뜻을 통감한 21세기 아줌마는 이제야 겨우 내 자취방을 하나 사수했다. 이제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글을 쓰는 일만 남았다. (불끈)     


자취방을 갖고 나자 생활도 은근 낭만적으로 변했다. 남편과 아이들을 초대해 커피와 다과를 대접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글이 잘 안 풀릴 때 딸을 초대하면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돌아가기도 한다 (거실로).


빵빵한 사운드로 영화도 보고 침대에 철퍼덕 누워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맥주를 마셔도 주방에서 마시던 혼맥과는 사뭇 다른 멋짐이 있다. 나는 젊은 시절에 꾸었던 시건방진 꿈에 취해 비틀대기도 한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무서울 것 없었던 스무몇 살의 나로 돌아간다. 차비를 아끼려 늦은 밤 영등포 뒷골목을 걸어가던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애송이, 백만 원 채 안 되는 돈을 받고도 주말도 없이 밤을 새우던 꿈바보, 그런 삶이어도 금수저 은수저 부러워하지 않고 반짝이는 쇠수저에 나를 비추며 '자신' 을 믿었던 멋진 젊은이.


마흔 한 살의 나는 지금 이 자취방에 앉아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글을 쓰고 있다.


자기만의 방, 모두 그 속으로 들어가 보길 바란다. 어쩌면 곰은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혼자 사유하고 인간이 되겠다는 진지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아들이 자기 방을 도로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조금만 더 겁보로 지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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