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G Jul 28. 2020

아이한테 그걸 읽어준다고?

와이낫? 너무 좋은걸요


 어디 산속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고 왔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코로나 때매 죽겠는데 장마까지 겹치자 마음이 영 눅눅해 못 살겠다. 분 바른 아기 엉덩이 같은 보송보송한 글이라도 읽으면 좀 낫겠지 싶은 심정이다.     


종일 애들한테 치여 내 책 읽을 시간은 못 내고 있지만 애들 책은 매일 읽어준다. 잠들기 전 아이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 지금껏 빼먹지 않고 유일하게 해오고 있는 나만의 육아 의식이다. 큰 아이가 아기 때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11년 차로 접어든다. 아마 아이가 원한다면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이고 읽어줄 용의가 있다. (설마 그러겠냐만은)


다행히 아이들도 책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한다. 취침 준비가 늦어질 때 “오늘 책 없다” 하면 후다 다다닥 재빠르게 이불속으로 직행이다. 그런데, 이 좋은 시간의 문제는 늘 책 선정에서 고비를 맞게 된다. 책 선정은 주로 아이들 편에 맡겨왔는데 나이가 좀 들자 남매의 각기 다른 성향으로 잦은 다툼이 발생됐다.      


“어제도 오빠가 읽고 싶은 거 골랐잖아. 오늘은 내 차례야!”

“그럼 공주 좀 고르지 마. 엄마~ 나 공주 얘기 싫어”

“엄마~ 나도 오빠가 고른 이야기 싫어~”     


매일 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솔로몬의 왕이라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 결국 도서 선택권은 내가 갖기로 했다. 그런데 도서 선정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연령대에 맞는 동화책을 읽자니 너무 길고, 그림책을 읽자니 너무 짧고... 잠들기 전 10분 15분가량의 스토리가 완결되는 책은 왜 없을까? 늘 아쉬웠다.

      

그때, 아이들 책장 구석에 내가 읽다 만 에세이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딸에 관한 육아 에세이, 임경선 작가의 ‘엄마와 연애할 때’라는 책이었다. 애들 책 읽어주느라 정작 내 책을 못 읽고 있네 라고 생각하던 찰나, 느낌표가 번뜩였다.  

   

'그래! 이거, 애들한테 읽어줘 볼까?'    


몇 페이지를 훑어보니 아이와 함께 봐도 무방해 보였다. 그 날부터 나는 밤마다 아이들에게 에세이를 읽어주고 있다. 어떤 날은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동화책도 아닌데 그런 거 읽어줘도 돼?    
 

물론이지. 이 좋은 걸 이제야 알게 된 게 안타까울 따름이야라고 답해주었다.


아이들 반응도 뜨겁다. 어른 책을 읽는다는 느낌 때문인지 더 호기심을 갖고 귀를 쫑긋한다. 분량도 딱 좋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므로 한두 챕터 읽어주면 내가 정한 시간에 딱 맞아떨어진다. 특히 동화에선 쓰이지 않는 다양한 표현법들을 아이들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으니 어휘력도 좋아질 거라 기대해본다. 나 역시도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에세이를 읽으면 한 사람의 세계가 보인다. 그 세계는 낯설고, 신기하고, 감동적이다. 그곳을 나의 아들딸과 동반해 함께 탐험할 수 있다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육아 에세이를 읽어주자 엄마를 이해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자기 위주의 사고가 강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에세이는 다른 사람의 세상도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하는 통로가 되어준다. 동화나 그림책 같은 상상력은 아니더라도 망원경으로 현실의 디테일 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어젯밤에 읽은 내용 중, 엄마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얼마나 고된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왔다. 아이들은 ‘엄마도 진짜 그래?’라며 궁금해했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지라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아이들은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앞으론 우리가 덜 힘들게 할게. 미안해”      


이 반응은 무엇? 제발 엄마 좀 이해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귓등으로 안 듣던 녀석들이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에세이의 마법이란 말인가? 나는 점점 에세이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십 대 때는 시, 이십 때는 일본 소설, 삼십 대엔 자기 개발서. 나이 때 별로 끌리는 책이 다 달랐다. 나이 마흔이 되고 나니 그냥 사람 이야기, 에세이에 가장 끌린다.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장대한 이야기는 없어도 사소한 일상의 발견, 소박한 다짐들이 담긴 에세이가 요즘은 가장 재미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아이들과 공유하는 것이 즐겁다.     


오늘 밤엔 또 어떤 에세이를 골라볼까?  여행을 오래 못 갔으니 여행 에세이?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꿈 에세이? 좋아하는 브런치 글 몇 개를 뽑아서 그걸 읽어줘도 좋겠다. 언젠가 나의 에세이를 아이들에게 읽어줄 날도 오겠지?



나는 또 아이들 머리맡에서 읽어줄 에세이를 고르러 총총 떠나본다.


 

작가의 이전글 마흔한 살 주부의 자취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