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G Aug 04. 2020

졸혼 말고 졸부모 할 건데요

내 친구의 꿈은 졸혼.      


그 시기와 방법까지 구체화해서 플랜도 다 짜 놨다. 둘째 아이가 대학만 가면, 현 남편 냅다 버리고 멋들어지게 살 거라고 졸혼의 칼날을 서슬 퍼렇게 갈고 있다.


졸혼 통장도 만들고, 취업도 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재산도 공동명의로 다 바꿔 놓았다. 이토록 계획적인 친구를 봤나. 계획 알레르기가 있는 내가 보기엔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졸혼하려면 몇 년 남았지? 친구 왈. 10년.     


10년을 그렇게 사느니 그냥 이혼을 해라! 이혼을!     


애들 때문에 안된단다. 그리고 이혼보단 졸혼이 여러모로 편하단다.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섭섭한 그런 존재가 아마 남편이라는 이름이겠지.  


이 타이밍에 남편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제법 남편과 잘 맞다. 무심한 나와 애살스런 남편의 조합. 사주에도 나와 있을 정도다.   


“화의 기운이 강하네... 애들이랑 안 맞고... 남편이랑은 잘 맞아”      


그래서 육아가 이렇게 힘든가? 남편과의 갈등은 크게 없는데 아이들과 겪는 갈등은... (말잇못) 사실 아이들과 딱히 안 맞는다기보다 이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내 전부는 아니다.


자식을 낳은 이상, 최선을 다해 키워 보겠지만 결국은 본인 인생,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인생을 먼저 산 코치일 뿐, 결국 깨닫고 성장하는 건 아이 본인이다. 그런데 언제 깨닫고 성장하리, 이제 9살 11살.


해본 일 중 부모의 일이 가장 어렵다. 부모도 처음이라. 이 쪼꼬미 인생이 내 손아귀에 좌지우지된다 생각하면 오금이 찌릿 저려온다. 책임지는 거 딱 질색인 여잔데, 어쩌자고 애를 둘씩이나... (사랑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  


비위 약한 내가 똥기저귀를 갈고, 국간장 진간장도 구분못하던 내가 집밥을 하고, 난생 처음보는 육아책을 고시생 처럼 뒤적이고 있으니 어느 순간 애가 난지, 내가 앤지 모를 물아일체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나는 어른의 언어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래 쩌여?" "여보, 쉬했어?" "오구오구" 이런 추임새들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깔깔 웃다가 이게 아닌데 싶어 꺼이꺼이 울다가 암튼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시절을 보냈다.


육아기가 끝났나 싶었더니 영혼이 탈탈 털리는 아동기에 이른다. 육체적으론 좀 편해졌나 싶었다. 따박따박 말대꾸는 그렇다 치자, 공부해야 하는 이유까지 납득시켜야 하는데 아무리 말해도 전혀 납득이 안되는 눈치다. 엄마의 허점을 알아챈 아이들은 맹공격 하기 일쑤고, 하늘도 무심치 코로나라는 몹쓸 전염병까지.


하루 종일 이런 애들과 버텨내는 삶이다.  


내 친구들을 만난 지가 언제더라...

어른 언어를 유창하게 해 본 지가 언제더라...

사회라는 큰 아일랜드가 저 앞에 보이는데 구조선은 날 못보고 그냥 지나치는 형국... 육아 무인도에 표류된 기분이다.  


친구에게 졸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릎을 탁쳤다. 그래, 그렇담 나도 졸부모 하자! 부모라는 이름, 내려놓고 날 티 나게 살아보자!


내 맘대로, 내 성질대로, 부모로서의 모범과 규칙에서 벗어나 기분 나쁘면 소리도 빽빽 지르고, 유흥도 즐기고, 내킬 때 훌쩍 떠나도 보는 삶. 생각할 수록 탐.났.다


그러려면 나도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야 겠지. 꾸준히 글을 쓰고, 연금도 들고, 혼자 놀아도 재밌는 법을 개발하는 것. 아이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나의 어쭙잖은 계획아닌 계획인 것이다.     


늘, 신기했다. 엄마는 왜 내게 그토록 헌신적인가, 시어머니는 왜 그토록 남편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는가? 자식이라고 명절에 주는 용돈 외엔 별다르게 해주는 것도 없는 처진데... 이런 내 부모들을 보면 나 자신이 좀 못돼먹고 매정한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헌신과 사랑 뒤에는 당연히 따라야 하는 자식의 의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부모도 부모 된 사랑을 강요하듯 자식 또한 자식 된 사랑을 강요받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말 대신, '너 자신을 가장 사랑하라' 라는 말로 본인을 애정 하는 데 힘 쏟으라고 말한다. 남만 생각하다 가족만 생각하다 인생을 통째로 발목 묶인 사례도 많이 봤다.


내 아이가 2인 3각 달리기보다 혼자 뛰는 경기로 승부 보길 바란다. 엄빠 눈치보지 말고 본인 살고싶은대로 살으란 얘기다. 나도 그럴테니.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졸부모하고 자기랑 즐겁게 살 거야!’라고 남편에게 말하자 소녀 남편은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인다.      


“난 평생 애들이랑 같이 살 거야...”     


187cm 100킬로 넘는 사람의 갬성수준하곤.      


“그냥 나랑 놀자. 애들은 지들끼리 놀라고 하고”     


남편은 그래도 못내 서운한지 입을 다물었다. (이 일을 어쩐다)      


무튼 내 목표는 졸부모다. 스무 살만 넘어봐라, 내 남편이랑 아주 재밌고 신나는 졸업여행을 갈 테니...      


“남편, 나중에 졸부모하면 외국 한달살기 할까?"

“난, 애들하고 살 거라니까”     




우선, 자식교육보다 남편교육부터 다시.    


작가의 이전글 아이한테 그걸 읽어준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