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나이드는 법
긁! 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말 그대로 긁힌,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다는 의미이다. 다른 의미로는 발작 버튼.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역린을 건들었을 때, 흥분하여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긁혔다"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긁힘의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긁혔을 때 '긁히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이 쿨한 것이요, 조금 더 큰 사람으로 나아가는 길. 그러나 지속적인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에게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다스리기란 쉽지가 않다.
조금 더 인생의 경험치가 쌓이고, 연륜이 많아지면 긁힘에 보다 너그럽게 대응할 수 있는 걸까? 최근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나이를 더 먹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성숙하거나 어른스럽거나 유치하지 않으란 법은 없는 것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니까, 나보다 밥그릇 몇 번 더 먹었으니까, 사회 경험이 많으니까 기대를 하게 되지만. 긁히는 건 나이와 관계없이 똑같은 것이었다. 곧 50을 바라보는 우리 횟의 과장님은 그야말로 유치뽕이다. 나와 업무적으로 한 번 부딪친 경험이 있는 그는, 그 이후로 나의 모든 행동과 촉각에 더듬이를 킨다.
한 번은 내 의자에 걸려있던 패딩 재킷에 시비를 건다. 자크가 2개 달려있는데, 그 자크가 은은하게 부딪히며 짤랑이는 소리가 거슬렸나 보다. 패딩을 다른 곳에 걸라한다. 내 패딩에 자크끼리 부딪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은근히 공격하거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려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더 못된 것은 그보다 윗 상사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또 친한척(?)을 한다는 점이다. 어쩜 그럴까.
반면교사 =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
최근에 이 단어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결국 큰 사람이 되는 방법은, 나는 그처럼 늙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되고, 나이가 먹을수록 보수화된다고들 한다. 나도 마찬가지일터다. 하지만 나이 듦에 따라 자기의 가치관이 생기고 주장이 고착화되는 것과, 감정을 드러내며 유치하게 구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굳이 '그렇게까지' 행동하는 그의 저의가 궁금해진다.
결국 큰 사람이 되는 길은, 인내와 포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가. 나 또한 긁힘 포인트가 있는 것을. 그래서 찾은 낮은 단계의 접근법은, 역시 반면교사다. 무언가에 긁혀서 으르렁거리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다짐뿐이다. 모두에게나 좋은 사람, 사랑받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아직 그릇이 작아서 그에게 상냥하게는 차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우선은 무시와 연민의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장착하고 반면교사 삼자. 큰 사람이 되는 수련의 일부라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