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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Jan 10. 2021

N잡러의 시대

모든 다 배달합니다 (김하영 저)

야흐로 N잡러의 시대다.

2019년을 떠들썩하게 달구었던 욜로(YOLO)족과 소확행은 2년 만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왜?


자본주의에서 하루를 사는 행복 이면에는 불안이 존재했다. 그 마인드가 3개월, 6개월, 1년을 이어가려면 결국 돈이 필요해서다. 돈 없이 진정한 욜로족이 되기 힘들었다. 소확행도 마찬가지. 인간의 본능은 소확행에서 결국 중확행, 대확행을 꿈꾸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다시 '일하자'로 회귀 중이다. 다만 일자리의 종류와 방식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을 뿐이다.  


"욜로(YOLO) 하다 골로 간다"


이 책은 플랫폼 노동에 주목한다. 저자는 전직 기자는 14년간 기자로 일하다 때려치우고 플랫폼 노동자가 됐다. 이른바 시험을 보고 안정적인 월급이 보장되는 정규직 일자리, 즉 전형적인 '한국식 일자리'를 버리고 과도기인 신산업에 뛰어들었다. 시대는 급속히 변하고 있다.


저자는 200일간 쿠팡맨을 시작으로 배민 커넥터, 카카오 대리운전기사로의 경험을 생생히 기록했다. 디테일한 묘사에 직접 경험한 것 마냥 재밌다.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직장에 대한 인식, 편견, 남 시선 등)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플랫폼 산업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다. 불안정하지만 미래지향적이며, 추후 더 확대될 수밖에 없는 현실. 또 AI 등의 기술 발달이 불러오는 인간의 노동소외. 오늘날 직장이란, 일자리란 무엇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N잡러가 대세가 되고 있는 요즘, 플랫폼 노동은 그중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일자리다. 쿠팡 플렉스, 배민 커넥터 등은  본인의 여유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해 소액벌이를 할 수 있다. 유튜버, 스마트 스토어 창업, 주식 투자 등도 마찬가지다. 투잡 쓰리잡을 고민하는 현대인들은 이렇듯 각양각색으로 돈을 벌 궁리를 한다.


이른바 본캐와 부캐의 '노동화'다.


물론 본캐 부캐를 따질 것도 없이 비자발적 N잡러를 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 많이 받고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불안한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뭔들 해야 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들에게 워라밸이니 소확행은 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점 더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의 경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제 N잡러는 생존이자, 본능적 욕망이자, 현실이 되고 있다. 더 이상 '남들이 좋다'라고 하는 회사 만으로는 생존을 영위하기 어렵다. 높은 급여의 대가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느니 벌이가 많든 적든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비대면이니 인공지능이니 하지만, 결국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배달하면서 겪은 비타 500 한 병의 따뜻함. 배민 커넥터로 소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어르신들이 전하는 배달 팁들. 나는 기계에 맞설 인간만의 유일한 강점이 '공감능력'이라 믿는다. 앞으로 공감과 감성이 창출할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것이다.


계약직, 프리랜서, 알바 등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개천 용 나는 시대는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자본이나 (암묵적으로 존재한) 계급 아닌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직업과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를 바꾸는 시도를 중앙에서 이끌지 않으면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N잡러들의 안전이 보장받고 하는 일에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최근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등 처우 개선에 대한 법안 발의가 한창이지만, 아직 부족하다. 제도가 보장될 때 인식 변화도 시작된다. 언제든 사람에 투자하고 사람이 창출할 가치에 주목하자. 세계는 급속히 변하고 있다.


나 역시도, 그간 하나의 시각에 얼마나 매몰됐는지 모른다. 바늘구멍의 고시를 뚫겠다며 내 청춘을 바쳐왔다. 물론 정말 가슴 뛰는 일이었고 모든 경험은 인생의 비료였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조건적인 사고방식이다. 안정 때문에, 남들이 보는 시선 때문에 뛰어드는 '무모함' 말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세상은 다이내믹하고 재밌는 것들 투성이다. 하고픈 걸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플랜 A에서 B로 살포시 옮겨놓는 행위, 혹은 A, B, C를 동시에 해보는 열의 만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어쩜 새로운 꿈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플랫폼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세우자. 국가는 이들을 보장할 법을 성실히 제정하고, 국민들은 플랫폼 노동의 가치를 상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배달을 시키는 민족이면서

동시에 배달을 하는 민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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