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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Aug 24. 2022

모든 변해가는 것들을 위하여

'라이크 크레이지'와 산타모니카 피어

혹시 '라이크 크레이지(2011)'라는 영화를 아는가?


로튼토마토 신선도 72%, 메타크리틱 68점의 이 미국산 저예산 로맨틱 드라마 영화는 사실 대중적으로 그리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시놉시스를 살펴보면 미칠 듯이 뜨겁게 사랑했던 한 커플이 여러 상황적인 문제들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되며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영화를 처음 보았던 그 당시(2012년)에도 상당히 진부한 소재의 이야기였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저예산 로맨스 드라마 영화로서 훌륭한 수준이지, 뭐랄까 영화적으로 이 영화를 최고의 영화로 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고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은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다. 처음 이 영화를 소개받았던 것은 2012년, 당시 복학을 하고 타 전공 수업을 듣다가 알게 된(지금은 거의 유일한) 여사친이 있다. 그때 백양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진짜 영화를 하는 영화학도였고, 지금도 영화 일을 하는 멋진 친구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동경으로 바라보는 그 친구에게 ‘네가 너무 좋아하는 그런 완전 예술 영화 말고, 그래도, 감성은 있는 로맨틱 드라마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러브, 크레이지, 스투피드’를 포함하여 몇 편의 영화를 추천해줬고, 그중 처음 봤던 영화가 바로 ‘라이크 크레이지’였다. 이후 이 영화는 내가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내 인생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내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직장인이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영화 촬영 스폿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자연스럽게 첫 번째로 선택하게 된 곳이 바로 ‘라이크 크레이지’에 나오는 산타모니카 피어였다. 산타모니카는 미국 LA 서쪽에 위치한 작은 해양 휴양 도시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LA시로 둘러 쌓여 LA시에 속해있다고 봐도 무방한 곳이다. 버버리 힐즈나 할리우드에서 산타모니카 블러바드를 타고 가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산타모니카 피어는 그 넓은 태평양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있는 오래된 작은 부두 유원지다. 산타모니카의 상징이자 그 유명한 route 66의 서쪽 첫 시작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사실 그 크기나 낡은 모습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고 한다.


'라이크 크레이지' 스틸 컷


영화 속에서 산타모니카 피어는 긴 시간 주인공들이 시간을 보내거나, 스토리 상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큼 가장 아름다운 연출의 장면에서 산타모니카 피어가 나온다. 두 주인공 영국 여자 안나(펠리시티 존스)와 미국 남자 제이콥(안톤 옐친)이 가장 뜨겁고 미칠듯한 사랑을 나눌 때 데이트 장소의 배경으로 활용되는 산타모니카 피어의 해 질 녘 모습, 라이크 크레이지가 국내 개봉을 했던 2018년 본 영화의 포스터에도 이 장면이 실렸을 만큼 참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는 특히나 이 장면에 매료되어, 처음 LA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을 때 숙소를 산타모니카 비치에 잡고, 일주일 여행 기간 내내 선셋 타임이 되면 관광을 멈추고 산타모니카 피어에서 해가지는 것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타임 랩스로 시간들을 담으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지는 해와 밤이 되어 형형 색색의 조명과 함께 돌아가는 산타모니카 피어의 명물 관람차를 보며 그때 당시 나는 ‘뜨거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꽤나 많이 생각을 했었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았던 장거리 연애였지만 서서히 서로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라이크 크레이지의 두 주인공들처럼. 그리고 한때는 미국에서 가장 핫한 장소였지만, 저물어가는 산타모니카 피어 유원지처럼. 비록 연애는 아니지만 뭔가 뜨거운 마음으로 선택하고 시작했던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또 조금씩 지쳐가면서 그냥 돈 버는 수단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그때의 내가 참 닮아있었다.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 차 정도의 직장인이었는데, 주변 동기나 동문 친구들이 일반적으로 기업에 취업하는 것과 다르게 뜻을 찾아 NGO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뜨거운 마음은 식어가고 현실적인 문제들(돈벌이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시절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이직을 하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다시 찾았던 2019년 산타모니카 피어는 전과 같은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니…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차마 말할 수 없는 결말도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지금 나의 모습과 꽤나 닮아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쨌든 열정(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든 청춘들에게 ‘라이크 크레이지’와 ‘산타모니카 피어’를 추천한다.




<'라이크 크레이지' 영화 추천 포인트>

1) '500일의 썸머' 같은 비러스윗 인생영화를 찾는 분

2) 안톤 옐친의 유작, 그때 나에게는 그가 티모시 샬랴메 였다.

3) 지금은 대배우(?)가 된 제니퍼 로렌스가 서브 여주로?! 주연 펠리시티 존스보다 왠지 예쁘게 느껴졌었는데 역시나


<'산타모니카 피어' 여행 추천 포인트>

1) 캐머릴로 아웃렛-말리부 해안도로-산타모니카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 추천

2) 뚜벅이라면 애벗키니-베니스비치-산타모니카로 이어지는 힙한 코스 추천

3) 이런 감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west coast 힙합과 함께 산타모니카에서 서핑이나 보드를 즐겨보라. 그러면 내가 gta 갱이 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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