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조이 Aug 24. 2022

우연이 운명이 되어가는 과정

'세렌디피티'의 세렌디피티3, '호우시절'의 두보초당

하나의 만남을 다루는 다양한 사람들의 방식이 있다. 그냥 아무 의미가 없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만남도 있고, 하나하나 의미가 부여되며 운명이라고 벅차오르게 되는 만남도 있다. 그 차이는 결국 그 만남을 바라보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매우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연에서 피어난 운명 같은 만남을 바란다. 이런 만남을 생각하다 보면 나에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2곳의 영화와 여행지가 있다. 바로 ‘세렌디피티(2001)’의 세렌디피티3와 ‘호우시절(2009)’의 두보초당이다. 두 영화 모두 이미 제목에서 우연한 만남 속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선 세렌디피티는 2001년 개봉한 피터 첼솜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영화다. 워낙 유명한 영화고 ‘러브 액츄얼리’와 함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영화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뉴욕의 겨울,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 가판대에서 우연히 같은 장갑을 고르게 되는 두 주인공 조나단(존 쿠삭)과 사라(케이트 베킨세일)가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지만, 현실적인 상황과 운명론을 믿는 사라의 선택으로 서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어긋난 후 7년 뒤 다시 만나게 되는 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렌디피티' 스틸 컷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 제목 ‘세렌디피티’(의도치 않게, 우연히 얻은 좋은 성과)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기도 하지만, 영화에도 나오며 지금부터 설명할 디저트 레스토랑 ‘세렌디피티3’를 의미하기도 한다. 되려 영화 제목이 이 레스토랑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유명한 뉴욕의 디저트 레스토랑이 세렌디피티3다. 앤디 워홀이 좋아했고, 두바이에 분점을 낼 정도의 이 디저트 레스토랑은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갈 때마다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코로나가 잠시 소강상태였던 2021년 11월 내가 마지막으로 갔던 뉴욕에서는 조금 여유롭게 프로즌 핫 초콜릿을 즐길 수 있었다. 보통의 관광지나 영화 촬영 등으로 유명해진 식당이나 카페들이 그 명성에 비해 맛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세렌디피티3는 일단 디저트류들의 맛이 정말 보장 되어있다. 물론 그만큼 비싸다! 그래도 한잔 테이크 아웃하여 록펠러 센터 아이스링크에서 두 주인공이 스케이트를 탔던 것을 생각하며 스케이트 타는 뉴요커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크리스마스 겨울의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주의: 테이크 아웃하면 정말 안 예쁘게 나옴)


세렌디피티 두 주인공은 이미 각자 만나고 있는 연인이 있는 상황에서 생긴 우연이라 약간 서양의 정서가 녹아있는 우연의 만남이라 꺼려진다면, 우리 정서(?) 동양 정서(?)에 가까운 우연한 만남을 잘 다룬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도 괜찮은 영화 선택이 될 수 있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정말 최고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인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에 비하면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우연한 만남이 운명이 되어가는 과정을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두 배우(정우성과 고원원)의 연기력으로 매우 잘 표현하고 있는 영화다. 중국 쓰촨 청두로 출장을 가게 된 동하(정우성)가 미국 유학시절 친구 메이(고원원)를 우연하게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다른 기억을 더듬어가며 다시금 싹트는 사랑을 느끼게 된다. 제목 호우시절이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라는 뜻을 지닌 것처럼 주인공 둘은 우연하게 내리는 비를 피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영화를 대학생 때 나름 썸을 탔다고 생각(일방향일 수도 있음)한 동기 여자 친구와 보았었다. 당시 우리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하진 못했지만, 그때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때 마침(!) 비가 와서 둘이 우산을 쓰고 나눴이야기들은 아련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호우시절' 스틸 컷


이런 아련한 기억을 바탕으로 2017년 두보초당을 동하처럼 나도 출장 마지막 날 방문했다. 여주인공 메이의 직장(?)이자 두 주인공이 처음 재회를 하는 장소가 바로 두보초당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이라고 평가받는 당나라 시성 두보의 생가로 본 영화의 제목도 두보의 시 ‘춘야희우’의 호우지시절이라는 구절에서 따왔음은 유명한 이야기다. 애초에 시라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나 정서를 담고 있어서 외국인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사실 두보초당도 외국인 여행객보다는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관광지다. 외국인으로 두보초당을 즐긴다보니 두보의 삶이나 시를 느끼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고즈넉한 경치에 잘 꾸며진 중국식 정원을 산책 삼아 걷는 의미가 더 크게 여겨졌다. 그 날 운이 좋게도 마침 비가 오는 두보초당을 걸으며 그 친구와 영화관에서 ‘호우시절’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센티해져 몇 시간을 서성였었다.


어떤 우연은 인연이 되고, 운명이 된다. 우리는 두 영화의 주인공들의 영화 이후의 삶을 알 수 없다. happily ever after였다면 말 그대로 운명적인 사랑이 되었겠지만, 혹시 우리는 알 수 없는 파국의 결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우연이 운명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통적인 요소를 하나 그리고 있다. 한번의 스치는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이 끝나지 않도록 만드는 주인공들의 결정적인 용기와 노력이 그것이다. 그 하나가 결국 우연을 운명으로 변화시킨다. 조심스럽게 고백하자면 나도 2017년 그때 두보초당을 서성이면서 호우시절을 함께 봤던  친구에게 몇년만에 잘 지내냐는 안부 톡을 보냈었다. 뭐. 그 연락의 결말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세렌디피티' 영화 추천 포인트>

1) 이미 명화의 반열에 든 영화라서 혹시라도 안보신 분들은 편하게 다 보시길 추천


<'세렌디피티3' 여행 추천 포인트>

1) 기네스에 오를 정도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디저트 레스토랑(물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아이스크림, 비싼 프렌치프라이...)

2) 5th avenue 쇼핑하고 들르기도 좋고, 센트럴파크 가기 전에 테이크 아웃하기도 좋아요

3) 운이 정말 좋다면 두 주인공이 앉았던 자리에서 먹을수도 있다!




<'호우시절' 영화 추천 포인트>

1) 정우성 잘생긴거야 말해무엇이지만, 저때 고원원 미모 정말 절정

2) 허진호 감독의 멜로(로맨틱) 드라마들은 정주행하는 재미가 있다.
    시한부 사랑 > 변해버린 사랑 > 다시 만난 사랑?

3) 13년 전 영화인데 정우성 배우 참 안늙지만, 놀랍게도 더 안늙은 출연자가 있다. 바로 김상호 배우님!


<'두보초당' 여행 추천 포인트>

1) 중국인 관광객 정말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 비가오는 날 아침 일찍 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음

   (기본적으로 청두는 날이 많이 흐리고 비가 자주온다)

2) 두보초당 앞에 백종원 선생님이 극찬한 진마파두부 본점이 있다. 나는 근데 향신 음식 잘 못먹어서...

작가의 이전글 모든 변해가는 것들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