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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Aug 24. 2022

여행지가 좋아서 영화를 찾다

'피아노'와 '폴링 인 러브'의 피하 비치

2019년 설 연휴, 몇 년 간의 여행과 출장으로 드디어 장거리 비즈니스 항공권을 끊을 정도로 마일리지가 쌓였다. 급하게 연휴에 맞춰 마일리지 항공권을 검색하니 당연히 원래 생각했던 미주나 유럽 항공권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뉴질랜드 오클랜드 인 – 호주 시드니 아웃의 에어 뉴질랜드 항공권! 연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말 급하게 티켓팅을 하고 여행을 떠났다. 앞서 1, 2편의 글에서 밝힌 것처럼 영화 로케이션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게 내 나름의 컨셉이었는데, 이때 뉴질랜드-호주 여행은 그런 것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돌아보니 내 여행 경험 중 최고의 여행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때는 상당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다.


오클랜드 도착 이튿날 기상 후 아무런 계획이 없던 나는 호텔 밖 오클랜드 중심가를 이른 아침에 서성거리며 사람 구경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한 무리의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 서핑보드를 짊어진 멋진 백인 청년부터 누가 봐도 하이킹 복장을 한 흑인 자매까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것인지 모르겠는데, 짧은 영어로 먼저 다가가 그들에게 지금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내게 자신들은 로컬 여행 가이드 상품을 신청해서 ‘피하(피라) 비치’로 떠나려고 대기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뭐에 홀린 듯 나는 인솔자 가이드가 오자 나도 돈을 내고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고, 작은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피하 비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피하 비치 전경(출처: 뉴질랜드 관광청)


피하 비치는 오클랜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꾸불꾸불한 숲 길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해변이다. 검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며, 사자 모양을 한 라이언 락이 유명하다. 가이드 상품이라 처음 피하 비치에 도착하기  라이언 락과 해변 전경을 볼 수 있는 스팟에 들렸다. 검은 해변 사이로 정말 사자 모양의 바위산이 인상적이었다. 해변가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고, 여름 성수기 시즌이었지만 사람이 그리 많지않았다. 가이드는 5시간 이후 돌아오겠다는 코멘트만 남기고 사라졌고, 서핑을 준비한 사람들은 서핑을 즐기러 하이킹을 준비한 사람들은 하이킹을 즐기러 떠나고, 아무 준비 없이 떠나온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혼자 남은 나는 가만히 앉아 한적한 해변가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세 마리의 반려견과 한 노 부부가 작은 개울부터 바다로 이어지는 해변가를 함께 산책하고 있다. 딱히 목줄을 하지 않은 반려견들은 개울과 해변을 넘나들며 물을 묻혔다 흙을 팠다 하며 자연을 즐기고 있고, 노년의 백인 부부는 산책 내내 손을 잡고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강아지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저도 두 마리의 강아지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짧은 내 영어에 흔쾌히 사진을 허락한 친절한 부부는 나에게 그들이 먹으려고 싸온 피크닉 샌드위치를 나눠주었다. 호주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한 지 꼭 5년쯤 되었다는 제이미 부부는(할아버지 성함이 기억이 안 난다..ㅜ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고, 모든 이야기를 알아듣진 못했지만 어느새 그 모습은 내 노년의 인생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이후 손자의 서핑 보드를 빌려서 허접한 실력으로 파도도 타보고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피아노' 스틸 컷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피하 비치에 대한 정보, 특히나 영화 촬영 관련 정보를 찾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가 영화 로케이션으로 쓰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1993)’ 촬영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여기서 하나의 오해를 바로잡고 가자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영화를 굉장히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많은 영화를 그냥 보기만 하는 영화 애호 문외한이다. 당시에도 제인 캠피온이라는 감독을 몰랐고, 나는 그녀를 최근에 들어와서야 ‘파워 오브 러브(2021)’를 통해 대단한 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설하고 호주로 넘어가는 비행기에서 아이패드로 본 ‘피아노’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스토리가 주는 감흥도 너무 좋았지만(이번에는 시놉시스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다), 피하 비치에서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는 음악과 영상미, 미장센 등이 어우러져 내가 방금 그 공간에 있었음에도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게 영화적 체험이구나!'를 느끼며 압도되는 경험은 아직도 놀랍다.


'폴링 인 러브' 스틸 컷


이후에 피하 비치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넷플릭스의 ‘폴링 인 러브(2019)’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피크닉 데이트 한 장면에서였다. 뉴욕에서 온 도시녀 가브리엘라가 뉴질랜드 호텔의 주인이 되는 이벤트에 당첨이 되고, 자신의 호텔을 운영하기 위해 시골마을의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좌충우돌을 겪으며 시골 남자 제이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전형적인 넷플릭스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그래도 영화에서 나오는 피하 비치는 뉴요커들이 꿈꾸는 전원생활의 로망이라 할 만큼 이상적인 이미지로 연출이 되는데 이미 경험이 있는 나는 그 연출에 100% 동의한다.
  
여행의 경험이 영화적 체험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화적 경험이 여행의 추억을 고조시킨다. 이 것이 내가 영화 로케이션과 여행을 연결하고자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다.  




<'피아노' 영화 추천 포인트>

1) 거장의 반열에 든 제인 캠피온의 초기작

2)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의상 고증이 정말


<피하비치 여행 추천 포인트>

1) 뉴질랜드에서 가장 위험한 해변이라고 하는데 파도가 높기 때문이다. 파도가 높다 = 서핑(!)

2) 다들 잘 아시겠지만 남반구 해변 여행은 선크림을 세겹발라도 모자라다 꼭꼭 챙기자

3) 해변 앞 마을에 약간 휴게소 같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거기 수제버거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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