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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Aug 24. 2022

영화가 역사를 그릴 때

<인도차이나>의 후에 황성, <콰이어트 아메리칸>의 콰이어트 아메리칸 

올해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정말 열대 우기의 동남아 같아서 2019년 베트남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절로 생각이 난다. 당시 나는 베트남 진출과 관련한 사업을 담당하게 되어, 베트남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노이에서 2달 정도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아무래도 긴 시간 베트남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보통 평범하게 한국인들이 여행으로 오는 베트남 지역들인 하노이, 호찌민, 하이퐁, 다낭 등부터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잘 방문하지 않는 후에나 빈, 껀터까지 많은 곳들을 방문하며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공산주의 정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관광으로 가면 전혀 경험할 일이 없는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이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 정말 모든 상황과 요소요소에서 매우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또 하나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베트남인들의 사관 또는 민족의식한 것이다. 그들과 비즈니스 이상의 관계를 형성할 때는 (베트남전 참전과 한류 열풍이 뒤섞인 미묘한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둘째 치고)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같이 밥을 먹고, TV를 보며 이야기를 하다가 실수를 하는 경우들이 생기곤 한다.


매우 명료한 역사적 사실에 비해 베트남-프랑스의 관계, 베트남-미국의 관계는 그들의 인식 속에서 상당히 미묘하고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우선 베트남-프랑스의 관계를 살펴보면 식민지배를 한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배를 당한 피해 국가라는 관계가 명확하지만, 우리가 일본에 가지는 식민지배 이슈에 관한 반일 감정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반응을 하는 베트남인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미국 관계도 비슷하다. 베트남전을 생각하면 미국을 싫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가장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세계 정세나 지정학적 상황, 역사 등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만, 나는 그런 내용과 관련해 전문적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라 여기서는 베트남과 두 나라가 참으로 묘한 관계라는 것만 짚고 가려고 한다.


이 미묘한 관계들을 다룬 베트남 풀 로케이션의 영화 2편이 있다. 레지스 바르니에 감독의 '인도차이나'(1992)와 필립 노이스 감독의 '콰이어트 아메리칸'(2002)이다.


'인도차이나' 스틸 컷


'인도차이나'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배 시기를 지나 일본과 프랑스의 전쟁 이후 제노바 협정으로 베트남이 독립하기까지의 약 20년을 다루고 있다. 인도차이나에서 태어난 프랑스인 엘리안느(까뜨린느 드뇌브)와 사고로 부모를 잃은 안남 황녀 출신 양녀 까미유(린 당 팜)의 관계를 통해 격동의 시기 프랑스와 베트남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영화에서 그리고 있다. 훌륭한 연기력, 아름다운 베트남의 풍경이 어우러져 조금 부족한 서사 구조에도 흡입력 있게 끝까지 영화는 이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역사에 대한 시각과 그 시각이 두드러지는 한 대사는 많은 지탄을 받았다. 엘리안느의 도움을 통해 프랑스 유학을 받은 탄이라는 인물의 대사를 보자. "복종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요, 프랑스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을 가르쳐줬어요, 그것들을 위해 나는 싸울 거예요." 이 지점에서 이 영화의 감독 레지스 바르니에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식민 지배와 침탈을 자행한 제국주의 국가의 후손인 감독이 주도적으로 이야기 하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라는 생각과 감정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전체가 식민 지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고 여겨지진 않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식민지배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베트남에서 프랑스 식민지배 시기를 재평가하는 것과 별개로)


'콰이어트 아메리칸' 스틸 컷


또 다른 영화 '콰이어트 아메리칸'은 정확히 '인도차이나' 영화의 마지막 배경이 되는 제노바 협정 이후 베트남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1955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런던 타임스의 기자인 파울러(마이클 케인)는 영국에 부인이 있지만, 아름다운 베트남 정부 푸엉(도 티 하이얜)을 사랑하고 있다. 미국의 공관원이자 CIA 요원인 또 다른 주인공 알든(브랜든 프레이저)은 파울러와 친구가 되지만, 그 또한 푸엉을 사랑하게 되며 셋은 격렬한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파울러와 알든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알든의 공작을 파헤치는 파울러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다. 영화에서 알든과 푸엉의 모습은 주체적일 수 없는 제3세계 국가와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새롭게 세계 질서의 패권을 잡고자 했던 당시 미국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작은 베트남전 이전에 집필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베트남에 어떻게 개입을 했는지 그리고 이후에 이러한 개입으로 베트남전이라는 비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실 원작 소설에 비하면 이러한 내용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 애매하고 어찌 보면 방관자적인 태도가 결말까지 이어지는 부분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콰이어트 아메리칸 카페(출처: 트립어드바이저)


다만 두 영화 모두 1940년 ~ 1950년대 베트남을 현지 로케이션으로 영상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위 영화들의 로케이션 여행지로 호이안의 콰이어트 아메리칸 카페와 후에의 후에 황성을 추천한다. 호이안의 콰이어트 아메리칸 카페는 '콰이어트 아메리칸' 영화에 아편굴로 출연한다. 실제로 방문해보면 공간의 역사가 강하게 느껴지는 매우 고혹적인 카페인데, 실제 카페 역사가 5대째 이어지는 100년이 넘은 곳이기 때문이다. 영화 이후 카페 이름을 콰이어트 아메리칸으로 변경했다고 하는데, 100년 넘게 이어진 장소가 미국 자본의 영화 출연 이후 명칭을 변경했다는 것은 어떤 부분에서 참 아이러니하다.


후에 황성 정문(출처: 위키피디아)


후에 황성은 베트남 중부 후에 지역에 있는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응우옌 왕조의 황궁이다. 응우옌 왕조는 '인도차이나'에도 나오는 것처럼 프랑스가 식민 통치를 할 때 베트남에 있었던 마지막 왕조로 이 후 안남이라는 프랑스 괴뢰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를 상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고, 그 규모도 상당한 편이라서 역사 유적지 관광으로도 손색이 없다. 베트남 여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후에는 그 위치 상 방문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후에 황성 하나만으로도 하루 들리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임팩트가 있는 장소다. 가지고 있는 비극적 역사와 공간 자체의 수려함을 느끼며, 흐엉 강을 따라 잘 구성된 황궁을 걷는 산책길을 추천한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아무래도 다른 일반적인 영화들과는 다르게 정치적 올바름이나 영화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작자들이 역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역사 그 자체가 스토리나 배경으로서의 힘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소개한 두 영화 속 역사관에 대해 옳다 그르다의 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역사를 다루는 영화는 영화 로케이션 여행으로 필연적으로 매우 매력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역사 소재 영화가 더 나오길 바랄 뿐이다.




<'인도차이나', '콰이어트 플레이스' 영화 추천 포인트>

1) 두 영화 모두 대배우가 주연을 맡고 있다. 엘리안느 역의 까뜨린느 드뇌브와 파울러 역의 마이클 케인. 프랑스와 영국을 대표하는 두 거장 배우의 중년 시절 절정의 연기력을 감상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베트남 중부 여행 추천 포인트>

1) 호이안과 후에 모두 한국인들이 메인 목적지로 찾아가는 여행지는 아니다. 보통 하노이나 다낭으로 여행을 갈 경우에 하루 정도 투어 하는 상품으로 많이들 방문하는데 두 곳 모두 하루 정도 숙박을 하며 여유롭게 보고 체험할만한 충분한 요소들이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다. 특히 후에는 국내선 공항도 바로 있기 때문에, 베트남의 험난한 길들을 헤매며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것보다는 숙박을 하는 것이 좋다. 숙박을 위한 호텔 시설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5성급 호텔이 매우 저렴한 가격이기에 후에 황성이 보이는 호텔에서 수영 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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