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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Aug 24. 2022

먼 훗 날 이불을 찰지라도

'체케랏쵸!!'의 오키나와

하나의 도시나 지역에 영화 전체를 헌정하는 듯한 영화들이 있다. 아예 도시 이름이 영화 제목에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라라랜드'(2016)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는 도시 헌정 영화 대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영화들은 특히 영화 주제 의식과 헌정되는 도시의 이미지가 잘 맞닿을 때 영화가 주는 감흥이 몇 배로 배가된다. 두 영화는 또 다른 내 인생 영화기 때문에 추후에 반드시 글로 다시 한번 소개할 예정이고, 오늘 소개할 영화는 오키나와 헌정 영화인 일본 청춘 드라마 영화 '체케랏쵸!!'(2006)다.


'체케랏쵸!!'는 많은 분들이 보셨을만한 유명한 영화는 아니지만, 내 또래라면 학창 시절에 한번 보았을 법한 영화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속칭 일드가 나름 열풍이 불어 당시 사춘기 많은 학생들이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PMP에 담아 돌려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인기가 있었던 일본 드라마와 영화는 큰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일본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흔히 말하는 학원물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기도 하다. '체케랏쵸'도 고등학생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이며, 그 중에서도 도전하고 꿈꾸며 사랑하는 청춘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체케랏쵸!!' 스틸 컷


주인공 토오루(이치하라 하야토)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 유이, 아카라, 데츠오와 함께 힙합 밴드 '워커홀릭'의 공연을 보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그들은 그 공연에 완전히 감동하여 오키나와 지역번호를 딴 098 힙합 밴드를 결성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의욕만으로 결성된 밴드가 잘 돌아갈 리가 없다. 처음 랩을 준비하고 공연을 하지만 첫 공연을 망쳐버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과 관계는 꼬여만 간다. 하지만 그것이 청춘아닌가. 영화는 우정과 사랑을 향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는 098 밴드의 좌충우돌 과정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사실 이런 장르(?)의 원조로 이미 대성공한 일본 영화 '워터보이즈(2001)'같은 좋은 선배 작품도 있지만, 내가 '체케랏쵸'를 추천하는 이유는 내 개인적 경험에 기인한다.


우선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2007년 나는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은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동질감 1 스택) 바닷가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촌동네 고등학생이었고, (동질감 2 스택) 당연히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동질감 2 스택) 결정적으로 그 고민했던 진로가 바로 '힙합', 래퍼가 되는 꿈이었다.(동질감 크리티컬 폭발)
이제와 30대 중반 직장인이 남들에게 고백하자면 조금 부끄럽기도 한 그 시절 내 꿈은 래퍼였다. 음악을 만들고, 공연도 서고, 먼 훗날 쇼미(!)도 지원해서 나가볼 정도의 힙덕이었던 내가 이 영화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공처럼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음악을 하고, 부족한 재능에 좌절하기도 하고, 서울이냐 지방이냐 고민했던 그 시절. 뭔가를 도전해봤던 모든 사춘기 청소년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니까 + 첫사랑은 덤.


이 영화에서는 오키나와 특유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거의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도전하고 좌절하고 사랑하는 모든 순간들을 오키나와 바다가 품어주는 것처럼 자주 연출되는데, 오키나와가 갖는 여름과 청춘 이미지를 잘 활용한 매우 영리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바다 외에도 이 영화는 오키나와 곳곳을 로케이션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영화 속 로케이션 여행지로 특정한 장소를 꼽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하나의 장소를 추천하자면 처음 주인공이 첫사랑 누나 '나기사'를 만나는 오키나와 대표 관광지 츄라우미 수족관이다. 한동안 아시아 최대 크기의 수족관이었던 츄라우미의 메인 수조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함께 첫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잘 나타내는 영화 속 좋은 장치가 된다.


'체케랏쵸!!' 스틸 컷


청춘물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 감성을 공감할 수 있을 때는 너무나 강렬하게 작품이 다가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기억조차 가물해지는 경우들이 있다. 나도 '체케랏쵸'를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렇게 재미있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이 작품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 영화를 다시 접하게 된 건 놀랍게도 대학 졸업 직전 인턴 생활 시기였다. 당시 만나게 된 여자 친구가 자신이 꼭 가고 싶은 곳이라면서 츄라우미 수족관을 보여줬고, 동시에 잊고 있었던 '체케랏쵸'가 떠올라 다시 보게되었다. 그때도 대학 졸업과 함께 새로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절이라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며 도전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내 글 1편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때 도전에 대한 열정으로 평범한 기업이 아닌 NGO/재단으로 진로를 잡아 갈 수 있었다.


한 영화가 두 번이나 내가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하고 있을 때 나타나 나를 위로해줬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비록 그 도전이 먼 훗날 돌아봤을 때 후회되거나 조금 부끄러운 일일지라도. 5년 뒤, 10년 뒤 내가 잠을 자다 이불을 차게 될 일이라고 할지라도.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 그리고 그 영감을 받은 도전, 이거 완전 청춘이잖아?




<'체케랏쵸!!' 영화 추천 포인트>

1) 음악이 주제가 되는 영화는 역시 음악이 좋아야 한다. 오키나와 출신 밴드 '오렌지 레인지'의 영화 음악!

2) '꽃보다 남자'로 스타가 되는 이노우에 마오의 초기작, 토루의 첫사랑 '나기사'보다 '유이'가 더 예쁜 이유


<오키나와 여행 추천 포인트>

1) 오키나와 그 자체. 일본(도시)과 동남아(해변 휴양지)와 미국(아메리칸 빌리지)이 오묘하게 섞여있는 느낌

2) 오키나와는 제주보다 큰 섬(부속도서 포함) 그러니 지역 곳곳마다 특색이 다 다르다, 렌트는 필수

3) 동네 스시집도 너무 맛있다... 우연하게 들린 작은 동네 스시집이 인생 스시가 되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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