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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Aug 25. 2022

환상을 구현하는 현실 공간

'나니아 연대기: 새벽출정호의 항해'의 맥킨지 호수

이번엔 내 개인적인 커리어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는 작년 11월에 이직을 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 입사를 했고, 회사의 사업 영역(전자제품)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신규 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전략이나 신사업 기획이 으레 그러하듯이 탑 다운 과제들이 많았고, 내가 처음 입사하여 받게 된 과제는 'Virtul Production'(이후 VP) 관련 프로젝트였다. VP란 새로운 방식의 영화 촬영 방법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기존에 활용하던 녹색 크로마키 위 촬영 후 CG를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대형 스크린을 이용해 촬영할 때부터 CG 처리된 배경화면을 함께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최근 나오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점점 이 방식을 활용한 제작이 많아지고 있다.(대표 사례: '스타워즈 만달로리안 시리즈(2020)')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영화 제작에 있어 정말 많은 변화들을 만드는데, VP를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고, 영화 제작 혁신 기술 정도로만 알아도 괜찮다.


어쨌든 내가 VP를 처음 접했을 때 든 첫 생각은 영화 제작에 있어 현실에 있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영화가 점점 줄어들겠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는 영화 제작자들이 CG 후처리 비용이 워낙 비싸다보니 특별한 장면이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세트장을 만들거나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했지만, VP가 더 상용화되면 해외 올 로케이션 비용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감독 머릿속에 있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CG로 만들어 촬영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로케이션 촬영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만약 몇 년 뒤에도 내가 이 소재로 글을 계속 쓰고 있다면 영화 로케이션 투어로 메타버스 공간을 소개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어낸 현실과 환상이 쉽사리 구별되지 않는 배경의 최신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예전 판타지나 SF 영화들은 어떻게 멋진 배경 연출을 했을지가 궁금해진다. 이 관점에서 2000년대 영화들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CG 기술 혁신의 기념적인 작품이라고 할만한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2003)'나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2009)' 모두 영화의 캐릭터나 모션 캡처에는 많은 CG 기술을 적용했지만, 영화의 배경은 대형 세트장과 뉴질랜드/중국 장가계라는 특별한 장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위 두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또 다른 판타지 영화 중 영화 스토리 상 가장 환상적이어야 할 장면을 실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공간을 배경으로 잘 활용해 환상적인 느낌을 잘 살린 사례가 있다. 바로 '나니아 연대기' 실사 영화 3부작 시리즈 중 그 마지막 '나니아 연대기: 새벽출정호의 항해(2010)' 편이다. 앞서 언급한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함께 고전 판타지 소설의 명작 중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C.S 루이스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앤드류 아담슨의 손을 통해 실사 영화로 제작이 되었다. (1~2편은 앤드류 아담슨 연출, 3편은 마이클 앱티드 연출) 환상의 세계인 나니아 대륙을 모험하는 유년기의 페벤시 4남매가 주인공으로 위기에 처한 나니아 대륙을 구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포주의※

그리고 시리즈 마지막인 '새벽출정호의 항해' 편의 제일 마지막 씬에서 앞서 언급한 환상을 구현하는 현실 로케이션 활용이 극대화된다. 나는 보통은 추천 영화를 보시려는 분들을 위해 영화의 시놉시스나 알아도 무방한 수준의 배경적인 설명만 하고 넘어가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고 그 장면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야 하기에 스포가 될 수 있음을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니아 연대기' 스틸 컷


수많은 모험을 거쳐 주인공 아이들은 세상의 끝에 도착한다. 그 바다에는 인어들이 뛰어놀고, 심지어 바닷물은 짜지 않고 단 맛이 나며 힘을 주는 신비한 곳이다. 백합이 피어 있는 동쪽 끝 바다는 정말 세상의 끝인 양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곳처 환상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두 주인공 남매 루시와 에드먼드는 이제 나이가 들어 더는 나니아 대륙으로 돌아올 수 없다. 환상의 세계 나니아 대륙을 떠남은 곧 두 주인공이 유년 시절과 작별을 고함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는 우리에게 유년시절 꿈꿀 수 있는 마지막 환상의 공간이라면 얼마나 신비롭게 그려져야 할까? 놀랍게도 이때 촬영에 활용된 공간은 완전한 CG가 아니다. 적절한 CG와 아름다운 현실 공간을 잘 버무린 연출인데, 호주 퀸즐랜드주의 프레이져 아일랜드에 있는 '맥킨지 호수'가 그 배경이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선샤인 코스트를 지나 2~3시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할 수 있는 프레이져 아일랜드는 세계 최대의 모래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120km가 넘는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진 이 섬은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매우 큰 섬이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하며 거주하는 섬은 아니고, 일부 리조트를 제외하면 자연환경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휴양 섬이다. 이 섬에는 정말 아름다운 해변과,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난파선 등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들이 있지만, 역시 가장 유명한 장소는 바로 영화에서 활용된 맥킨지 호수다.


맥킨지 호수에 처음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매우 곱고 하얀 모래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마치 호수가 아니라 해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바다같이 보이는 이 호수는 지형과 고도차로 인해 모두 빗물로 만들어진 담수호라는 점이다. 특히 고운 모래가 필터 역할을 하여 아주 순수한 물로만 구성되어 있고, 더해 약간의 산성기를 띄고 있어 이 호수에는 아무런 물고기나 생물이 살지 않는다. (수영하고 즐기는 데 있어 인간에게 유해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너무나 맑아 자연스럽게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데 어둡게 보이는 곳은 그 깊이로 인한 것이다. 해변의 모래사장처럼 생겼으면서 동시에 짠맛이 나지 않는 호수이니, 영화에서 단 맛이 나는 바다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 적절한 선택인 것이다.


맥킨지 호수(출처: https://www.jenniewanders.com/fraser-island-tours/)


맥킨지 호수 외에도 나니아 연대기는 탬보린 국립공원 등 호즈 퀸즐랜드 로케이션을 판타지 세상 구현에 훌륭하게 활용하였으니, 호주 동부로 여행을 간다면 영화 속 로케이션을 투어해보는 것도 큰 재미가 될 것이다. 또한 브리즈번과 함께 골드코스트라는 세계 최고의 휴양 도시(필자 선정)와 바이런베이 같이 너무 아름답고 힙한 도시도 함께 있으니 여행하기에 정말 환상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유년시절 마지막 판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나니아 연대기' 추천 포인트>

1) 반지의 제왕 3부작이 어른을 위한 판타지라면 나니아 연대기 3부작은 유년시절을 위한 판타지에 가깝다. 두 영화를 스트레이트로 쭉 이어 보면 판타지 세상에서 주말을 삭제할 수 있다(?)

2) 실제로 영화를 5~6년에 걸쳐 찍었기 때문에 4 남매의 실제 외형 성장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3) 넷플릭스에서 실사 드라마화 판권을 사 간 지가 꽤 되었다. 코로나 이슈로 제작이 지연되는 듯 하나 후일 드라마 시리즈가 나오면 영화와 비교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맥킨지 호수' 추천 포인트>

1) 보통 브리즈번으로 여행을 가면 투어 상품으로 가까운 모튼 섬을 많이 가는데, 두 섬은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점이 많다. 모튼 섬에서는 역시 명물인 돌고래 밥 주기와 난파선 사이 스노클링이 메인이고, 프레이저섬은 사구로 이루어진 사막이나 호수, 해안가에 생긴 천연 수영장 등 좀 더 평화로운 느낌의 액티비티가 메인이다.

2) 누가 영국 자치령에서 나온 나라 아니랄까 봐 호주도 사실 식도락으로는 큰 즐거움이 있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 호주 동부 모튼 베이 지역에는 '모튼 베이 버그'라는 특산물이 있다. 벌레라고 하니 꺼려지는데 바닷가재의 한 종류로, 이곳에 간다면 한번 먹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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