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노래

by 조성현


여름은 왁자지껄하다. 빽빽한 나뭇잎이 서로를 부비며 연주하고 매미들은 합창한다. 새들은 제 각각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언제는 댄스곡 같기도 하고, 발라드 같기도 하고, 힙합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보면 숲은 당차게 이야기한다. "아뇨! 저는 그런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게 맞다. 숲은 자연의 노래를 한다. 여름의 노래를 한다.


65194C4A-5F68-4CFC-93B9-3D624DE72ECF_1_105_c.jpeg?type=w1
6147DE8E-5950-46A7-B4E9-B7D59040A9C6_1_105_c.jpeg?type=w1
집에서는 보는 여름 숲 풍경이 아름답다.


집 앞에 숲이 있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축복이다. 푸른 풍경이 주는 안락함도 안락함이고 생명들이 주는 생동감도 생동감인데, 의외로 감상을 주는 것은 거기를 거니는 사람들이다. 맨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다니는 나로서는 정말로 놀라운 발견이다. 나뭇잎들이 부비며 연주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어느정도는 부비며 살아야 근사한 한 그루 나무가 될 수 있는가보다 싶다.



날이 따뜻해진 이후로는 종종 둘레길을 달린다. 배가 부른 아내는 살살 걸어 둘레길을 한 번 왕복하고, 나는 뛰어서 두 번 왕복한다. 삼십분쯤 지나면 우리는 출발선 무렵에서 다시 만난다.


D5DC854B-AED3-4C38-8FEA-586E24FB31F7_1_105_c.jpeg?type=w1
E9610D28-81C5-46A2-8819-37B15D792CA8_1_105_c.jpeg?type=w1
차가 없어 산책하기 좋은 둘레길이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덕분에 한적하다는 점이 주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다.


그 날은 자연의 합창단이 공연을 마친 밤이었다. 풀벌레 소리가 부드럽게 흐르는 어두운 둘레길을 달렸다. 두 번을 왕복하고 아내와 만났다. 아내는 벤치에 앉아서 쉬고 나는 스쿼트를 하며 마무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할머니 두 분이 벤치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목소리에는 수줍음이 담겨 있었다. 그 대신 두 명의 목소리가 포개져 있으니 힘이 생겼다. 서로의 목소리가 서로에게 의지하기에 가사를 이어갈 수 있다. 친구의 목소리에 용기를 얻어 나의 목소리를 내고, 나의 목소리에 친구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 테다. 두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단단해졌고 어느새 수줍음은 사라졌다.


아내와 나는 그 노래를 가만히 들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아내는 그 노래가 찬송가 같은 건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어디선가 종종 듣던 노래였다고 생각했는데 애써 기억해낸 토막 가사로 노래를 찾았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였다. 할머니 두 분이 늦은 밤에 부르는 노래 치고는 너무도 애틋한 사랑 노래였다. 그녀들의 젊은 시절에 있었을 강렬한 사랑을 떠올리기에 그 밤의 둘레길은 너무 평화로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덕분에 그 평화가 낭만이 되었다.


output%EF%BC%BF4231245597.jpg?type=w1 토막 가사로 노래를 찾고 신나 아내에게 자랑했다.


여름에는 숲이 노래하고 사람도 노래한다.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배려하며 부른다. 너 한 소절, 나 한 소절. 숲이 부를 때는 사람이 듣고, 사람이 부를 때는 숲이 듣는다. 서울 한 복판의 둘레길에서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너무 빽빽한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나에게는 위로의 노래였다. 덕분에 서울 살이가 버겁지 않다.


C8188810-B150-45DD-BF99-AA50A8D92EA4_1_102_o.jpeg?type=w1 여름 저녁 노을빛이 몽환적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실인지 환상인지 헛갈린다.


F0E1E9EE-958E-4F8C-B2DB-3D445158560D_1_105_c.jpeg?type=w1
6DAFA227-7701-4D6F-9098-13983348ACF9_1_105_c.jpeg?type=w1
풍경을 만끽하고 싶어서 외창 청소도 주기적으로 한다. 뭐든 부지런해야 즐길 수 있는 법이다.


BDAE67DE-0234-4C4C-8C68-6CA5DCFDE0E3_1_105_c.jpeg?type=w1
04C3A47E-53A7-4207-98C0-D646473046CA_1_105_c.jpeg?type=w1
덩치가 꽤 커서 귀여움은 없는 청설모가 있다. 어르신들의 놀이터, 황토길도 아주 잘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