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이 떠들썩해졌다. 손님들은 보물찾기하는 아이들처럼 집 이곳저곳을 꼼꼼히 들춰봤다. 이건 어디서 샀느냐, 저건 원래 저런 색이냐, 달뜬 목소리로 물었다. 나와 아내(그리고 뱃속의 수달이까지)만 조용히 지내던 스무평 남짓의 작은 집이 드넓은 운동장이 되었다.
집의 기능에는 여럿이 있을진데 그 중 아늑함에 대해서는 꽤 자신있는 집이다. 작년에 인테리어를 할 때 따뜻함을 담으려고 애를 썼다. 따뜻함에 대해서는 저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인테리어에 있어서는 그 답이 어느정도는 정해져 있다. 나뭇결에서 배어나오는 곡선의 온화함과 조명에서 방사하는 노란 빛의 온기가 그렇다.
우리집의 아늑함은 철저히 나와 아내의 분업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화초를 키우고 아내는 조명을 배치한다. 나는 매일 똑같이 돌보는 것을 좋아하고, 아내는 일상에 변화를 주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화초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조명은 새로 생기기도 하고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사실 우리 집 하이라이트는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이건 인테리어가 아니라 익스테리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집을 구할 때를 회상해보자면, 이 풍경을 보는 순간 아내와 나의 머릿속에서 - 동시에 - 딸깍 하고 결정 스위치가 내려져버렸다. 사실 우리는 집을 구한 게 아니라 이 산을 구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전에 살던 신혼집에서 아내는 늘 나무 노래를 불렀다. "다음 집에서는 한 그루라도 괜찮으니 창 밖으로 나무가 보였으면 좋겠어." 나무 한 그루가 아니고 숲이 보이니, 그 소원은 이루어지다못해 곱빼기로, 제곱으로, 아니, 복권에 당첨된 셈이 되었다. 요즘도 아내는 침대에 누워서, 쇼파에 앉아서 숲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곤 한다. 아내는 전생에 무엇이었으려나.
집에 손님이 올 때면 내 손발이 분주해진다. 나는 집에 손님이 오면 대충 배달음식 시켜 먹기가 안된다. 손님이 소중한 시간 내어 먼 길을 왔는데 내놓은 음식이라는 게 프랜차이즈 피자나 족발, 보쌈이면 손님을 푸대접하는 기분이 든다. 이건 나의 어머니를 보며 자란 탓이 클테다. 어머니는 짜장면과 탕수육은 물론이고 과자까지 직접 손수 만들어주시곤 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옆집 아주머니 댁에서 고추참치라는 속세의 맛에 눈을 뜬 적이 있었다. 그날로 어머니께 "고추참치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고추참치를 뚝딱 만들어주셨다. 나는 속세의 맛과 확연히 다른 홈메이드 고추참치의 맛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참치에서 어머니의 애정을 맛봤다. 그렇다보니 나도 손님에게 내드릴 음식에는 당연히 애정이 담겨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줄곧 (있어보이기 위해) 양식을 해왔는데, 지겹기도 해서 한식을 준비했다. 아롱사태 수육과 연어와 아보카도를 넣은 김밥, 그리고 미나리전을 했다. 예쁘기는 양식이 예쁘긴 한데, 혀에 착착 감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한식의 완승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한참 전부터 한국인의 DNA에는 밥심이라는 게 각인되어왔으니 밥이 빠지면 배가 헛헛한 것은 당연하다. 요즘은 식단이 상당히 서구화되어서 햄버거도 먹고, 파스타도 먹고, 심지어 샐러드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지만, 그런 영혼 없는 식사는 껍데기만 먹는 느낌이 나기도 한다. 모든 민족에게는 각자의 소울 푸드가 있기 마련이고, 한국인에게 서양식은 소울리스 푸드일 수 밖에 없다.
손님이 돌아가고 집에 남은 것은 쌓인 설거지 거리다. 너저분한 모습이 싫지 않다. 잔반 없이 바닥을 싹싹 비운 그릇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손님의 미소를 비춘다. 기름과 양념이 잔뜩 튀어있는 가스렌지 주변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수다를 재현한다. 남은 재료들은 내일 또 다른 음식으로 새롭게 조합될 것이다. 파티의 맛은 곧 일상의 맛으로 변할 것이다. 화려함은 수려함으로, 복잡함은 단순함으로, 변칙적 돌발은 규칙적 루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반복의 평화가 얼마간 지속되고나면 또 손님맞이는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