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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까치 Dec 13. 2017

혼자가 외로운 당신에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책 소개

화려한 싱글, 혹은 행복한 결혼. 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예전 같으면 모두가 행복한 결혼을 선택하겠지만, 요즘은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입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지요. 하지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오해를 푼다면 이런 고민도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냥 화려한 싱글도, 늘 행복한 결혼도 없다는 노명우 교수의 말은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지요.



책 쓴 사람

혼자 사는 노명우 교수

노명우 교수는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아주대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계시지요. 책 제목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그는 혼자 삽니다. 혼자 사는 게 뭐 혼자 사는 거지 어디 거창하게 할 말이 있겠냐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노명우 교수는 그런 사람입니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고리타분한 인문학자가 아니라, 그보다는 우리가 부딪히는 평점한 일상 속의 딜레마를 인문학적으로 풀어 주는 친근한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외로워서 그래


다들 그런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지요. 술취한 한 밤에 헤어진 옛 연인에게 연락을 하고선, 다음 날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이불을 발로 차던 경험 말입니다. 외로움에 사무쳐 떠나보낸 그 사람에게 ‘너 아니면 안될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라고 호소해보지만, 글쎄요. 그다지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하필이면 꼭 헤어진 옛 연인이 생각나는 이유는 단지 ‘외롭기’ 때문입니다. 이제서야 그(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외로워진 당신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일 뿐입니다. 외롭지 않을 때는 헤어진 연인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게 그 증거지요.

혹여나 마침 상대도 외롭던 차여서 뭐 어찌저찌 재결합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위기는 다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제 외로움은 해소가 되었지만, 도리어 이제는 자유가 고픕니다. 아아, 왜 인간은 이토록 간사한 동물인 걸까요.



외로움과 자유 사이


결국에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습니다. 노명우 교수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화려한 싱글도 없고, 마냥 행복한 결혼도 없다.’ 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이것은 역할에 대한 선택일 뿐이지요. 그리고 모든 선택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취하는 것이 있으면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솔로의 좋은 점이라면 바로 자유로움입니다.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문자메시지든 전화든 꾸준히 연락을 유지하고, 주말에는 둘이 만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해야 하는 일련의 모든 노력들을 기울이지 않아도 됩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기념일도 일일이 챙길 필요가 없으며, 딱히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오는 길에 네 생각나서 하나 샀어’라는 식의 감동멘트도 틈틈이 날려주는 센스를 발휘할 집중력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당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의무들은 연인이라는 관계에 동참한 일원으로서의 역할입니다. 이 책임을 가지지 않는다면 비록 자유롭기야 하겠지만, 대신 외로움과 더 친해져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두 가지 가치가 상충하게 됩니다. 외로움의 타파냐, 자유로움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화려한 싱글과 행복한 커플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아 보이시나요? 말했듯 우리가 비교하는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단지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선택하고 그것에 충실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떡은 먹지도 않고, 가지지 못한 떡에만 넋을 잃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노명우 교수가 말하는 포인트가 숨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솔로니 커플이니 하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선택이든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어떤 떡이든 손에 든 떡을 맛있게 먹으면 그만입니다. 



선택은 단순한 정신승리가 아니다


자세란 ‘능동’과 ‘피동’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솔로에도 적용해보자면, 능동적 솔로는 충실하게 솔로로서의 삶을 만끽하는 것이고, 피동적 솔로는 연애를 하고는 싶지만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둘 중에 어떤 솔로가 되고 싶으신가요.
능동적 솔로는 피동적 솔로에 비해 자신의 상태를 또렷하게 인지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의지로서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요. 비록 그것에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정신승리라도 하는 게 낫다

언뜻 보면, 상황은 전혀 변한 게 없는데 단순히 정신승리 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결할이 가지는 가치는 그렇게 가벼이 여길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그 결정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면 그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혼자일 수 있는 능력, 고독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 쉽게 말해, ‘홀로서기’ 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노명우 교수가 말하는 바로 ‘자신이 스스로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체성입니다.  



홀로서기의 비결은 '취미'


그렇다면 홀로 바로서기는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노명우 교수는 조금 생뚱맞은 솔루션을 내놓습니다. 그는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취미’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취미란 자유의지와 기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알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은 ‘스스로의 입법자’가 되어 건강한 관계를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됩니다. 
보통 취미라고 하면 시간이 생기면 하는, 혹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선택 활동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명우 교수의 말에 따르면, 취미는 우리가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 많이 반복했기에 상투적인 표현이 되어버린 ‘홀로서기’는 그렇게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정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선택해야 하며, 그 선택은 스스로를 잘 알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질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홀로서기가 가능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로움에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로움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결정권을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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