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될 준비

by 조성현

우리집에 새 구성원이 합류하기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수달이를 맞이하며 연차 소진, 배우자출산휴가, 육아휴직까지 쓰리 콤보를 시전할 계획인데, 심지어 그 시작 시점은 수달이가 태어나기 전이다.


나의 계획을 들은 회사 사람들로부터 "네가 낳는 것도 아닌데 왜 태어나기 전부터 휴가를 쓰냐", "산후조리원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뭣하러 그때 휴가를 쓰냐", "아내가 복직할 때 네가 육아휴직을 써야지, 왜 동시에 쓰냐" 잔소리 콤보 공격을 받는다. 이런 말들을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의견에 의문을 갖는다.


나는 아직 아빠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시간의 흐름이 당황스러운데,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본인들이 아빠가 되기 직전까지, 아니 된 직후에도 계속 회사일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하다. 물론 여건이 되지 않은 사람도 있겠으나 다들 같은 회사 다니고, 살만하신 분들이고,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도 있으니 참 가치관이라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새삼 느낀다.


이런 준비도 준빈데 진짜 준비는 마음의 준비...




내가 쓰리 콤보를 시전하는 것은 독박 육아 같은 일방의 희생을 재료로 하는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사회적 책임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차마 회사에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고, 산후조리원에서 아내와 함께 있고 싶고, 꼬물거리는 아이의 하루를 종일 누리고 싶다. 대체 그런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무서운 녀석은 누구란 말인가.


효율. 내가 사랑하는 단어, 효율. 하지만 지금 나에게 효율이란 생산성의 탈을 쓴 악마다. 낭만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대화와 애정이 싹트는 토양을 덮어버린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하면 남편이 출산휴가를 쓰고, 아내와 남편이 육아휴직을 번갈아 가며 써야 효율적이라는 사실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알려진 정보들의 출처와 신빙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육아휴직 어떻게 썼느냐고 물어보고, 복사 붙여넣기 식으로 따라한다. 그리고 배 아파 아이를 낳은 이는 역시 효율적으로 병든다. 아랫배에 한일(一)자 흉터를 새긴 채 병상에서 누워 병들고, 말도 안통하는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치우며 병든다.


그게 다인가. 밥 잘 주고 잠 재우면 찌는 게 살이고 크는 게 키라지만,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키워 내는데 필요한 게 어찌 밥과 잠 뿐이겠는가. 아이가 무엇으로 자라는지, 부모는 무엇으로 완성되는지 알아야 제대로 된 번식인 것을. 분리수면이 어쩌고, 하임리히가 어쩌고도 물론! 알아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삶에 대한 태도를 이식하는 일일테다. 점수보다는 흥미를 아는 아이, 순응보다는 반항을 택하는 아이, 납득보다는 의심을 가지는 아이여야만 삶을 제 것으로써 소화시킬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마음이 무거워져 버린다. 그러니 연차에 출산휴가에 육아휴직까지 쓰리 콤보를 발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여자의 남편 노릇도 이렇게 바쁜데, 한 아이의 아빠 노릇까지 하려니 자연스럽게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 내 뇌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돼. 앞으로 빡셀거야. 그래, 아마 나는 더 바빠질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게 내 행복이고 낭만이다.


진짜 준비는 이런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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