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었다. 후암동에 살 적엔 남산을 달렸고, 지금은 안산을 달린다. 산에 만들어진 자락길이 좋은 이유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평탄한 길을 원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어디 평탄할 수만 있던가. 둘레길 달리기는 인생의 내성을 길러준다. 오르막에서는 조금 더 힘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내리막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가르친다.
경사가 가파른 코스에 이르면 숨은 점점 가빠지고 보폭은 좁아진다. 내 호흡 소리가 내 귀에 맴돌면 그 소리에 내가 더 지쳐서 그냥 멈춰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느려지는 속도에 자존심이 상해서 괜히 더 발을 세게 굴러 앞을 뚫고 나간다. 오르막에서 힘을 많이 써버리면 뒤가 힘들 걸 모르지 않지만 어쩐지 지금의 싸움에 패를 다 걸어버리게 되고 만다.
한바탕 결투가 끝나면 어김없이 내리막이 나타난다. 이제 좀 쉬겠구나 싶어도 사실 그게 아니다. 내리막은 내리막의 싸움이 있다. 오르막에서 손해 본 속도를 만회해 보겠다고 경사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가는 보폭이 따라갈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러다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발이 땅에 착지하는 게 아니라 부딪히는 형국이 된다. 발을 쿵쿵 내리치면 무릎과 발목이 곧 아파온다. 그러니 내리막에서는 또 몸을 뒤로 젖혀 속도를 조절해야만 한다.
추진과 제동을 번갈아 반복하며 삶을 떠올린다. 오르막과 내리막,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를 몸으로 실감하며 위로받는다. 나의 고통도, 나의 기쁨도 끝날 것이라는 사실이 다음 코스를 기꺼이 맞이하게 한다. 어차피 끝날 거니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수달이가 태어나기까지 이틀이 채 남지 않았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위급 상황에 머리가 바쁘다. 양수가 터지면 119를 먼저 부르고, 분만실에 전화를 해두고, 구급대원이 오는 와중에 짐을 챙기자. 나는 내 차를 타고 가는 게 낫겠지? 거기에 온갖 짐들이 다 있으니까. 그건 119에 물어보는 게 낫겠다. 이런 생각을 하염없이 하다 보니 겁을 먹어서 앞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그 억겁 같은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아내가 너무 무섭지는 않을까? 너무 아프지는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낳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는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달리러 밖으로 나왔다. 다리가 무거웠다. 온갖 상념들이 다리에 묶여 모래주머니가 되었다. 역시 괜한 오기가 생겨 발을 더 세게 굴렀다. 오르막에서는 허벅지에 힘을 주고 발은 지면을 힘껏 밀어냈다. 내리막에서는 몸을 뒤로 젖히고 경쾌하게 발끝을 내밀었다. 탁탁탁탁, 내 귀에 들리는 내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발바닥과 지면이 충돌하며 걱정거리는 하나씩 비산되어 사라졌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됐다. 내리막이 끝나자 오르막이 시작됐다. 달리는 내내 이것의 반복이었다. 하나의 종료는 또 다른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 나는 달리며 생각했다. 출산은 끝날 것이고, 희경(喜景)이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덕분에 발을 내딛을 수 있다. 아내와 나는 함께 달릴 것이다. 수달이를 등에 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