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의 기록

by 조성현

오전 9시 14분.


병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긴장이 극에 달했다. 오늘 드디어 수달이가 세상에 나온다. 아내와 수달이 모두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 뿐이다.



오후 1시 25분.


고대했던 만큼 두려웠다.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무념! 무상! 유체! 이탈! 긴장한 아내와 주고 받는 농담은 수술실 입구 앞에서 멈췄다. 아내는 홀로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안내받은 대로 신생아실 앞에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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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O병원] 정OO님 수술 준비 중입니다


건조한 텍스트가 무심하게 던져졌다. 수술대 위에 누워 차가운 천장을 바라보는 아내를 상상했다. 아내는 생각할 것이다. 무념무상. 유체이탈. 근데 그게 되려나. 이제 곧 날카로운 나이프로 배를 가를텐데. 아내가 걱정됐다.



오후 2시 14분.


기다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수술 준비라더니 50분이 지나도록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건지. 하도 연락이 없으니 이미 시작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면 수술 준비 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닐까 두려웠다. 별 생각이 스칠 때 텍스트가 다시 얹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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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O병원] 정OO님 수술 중(14:14~)입니다.


아, 이제 시작했구나. 근데 무슨 수술 준비가 50분이나 걸리지. 마취하는 게 오래걸리나보다. 궁시렁 대면서 신생아실 앞을 서성거렸다. 이제 곧 아내의 양수는 쏟아질 것이고 거기서 유영하던 수달이는 뭍으로 나올 것이다. 나는 제자리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시간이 너무 끈적해져서 흐르지 않았다. 늪처럼 고인 시간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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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34분.


복도 모퉁이에서 인큐베이터가 나타났다. 수달이다! 내 자식이 다가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것에 직격하는 내 눈빛을 알아차린 것인지 간호사가 인큐베이터를 끌며 내게 말했다. 정OO 아기 아버님이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저항없이 끌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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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는 너무 작았다. 임신 막바지에 몸무게가 평균에 조금 못미쳤던 터라 작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작아도 너무 작았다. 신생아 입원 안내문에 적힌 몸무게는 3.04kg이었다. 어라? 3키로가 넘었네? 근데 이렇게 작다고? 이런 크기의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저 작은 얼굴에 눈코입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불가해한 것이었다.


간호사는 수달이가 호흡을 온전히 하지 못해 산소 치료를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와중에 교수님이 신생아실로 들어갔고, 괜히 다급해보이는 그의 뒷모습이 불안했다. 간호사는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며, '많이'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문장에 '많이'라는 부사를 왜 얹은 걸까.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 심각하긴 하다는 건가. 아니면 별 뜻 없이 얹는 습관성 부사인 걸까. 또 생각이 많아진다.



오후 3시 00분.


기다림에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온갖 종류의 푸시 알림이 떨림을 전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물건을 받았으면 구매확정을 해달라는 네이버, 해외여행은 T로밍과 함께하라는 SK텔레콤, 이번달 결제금액은 이정도라는 하나카드,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라는 노동조합 위원장. 그 어떤 소식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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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O병원] 정OO님 회복 중(14:52~)입니다.


드디어! 30분쯤 지나서야 따뜻한 소식이 도착했다. 무탈히 수술이 끝났구나. 별탈 없어 다행이다. 메시지로 실시간 소식을 전해주는 문자 발송 시스템이야말로 진정으로 환자를을 위하는 인본주의, 휴먼 퍼스트 혁신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회사로 복귀하면 나도 꼭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



오후 4시 00분.


회복을 시작한지 1시간 8분이 지났다. 대체 '회복 중'이 정확히 어떤 의미였을까. 수술이 끝나고 잠시 회복하는 중이라는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회복은 병실에서 하는 것 아닌가? 수술 후 회복이 따로 있고, 병실의 회복이 따로 있는 것일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오후 4시 27분.


수달이는 호흡을 잘 하고 있을까? 신생아실에 전화를 했다.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정OO 아기 아빠인데요, 상태는 좀 어떤가요? 아, 아버님. 산소 치료 시작했고, 상태가 호전되고 있어요.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네, 상태 조금 더 관찰해볼 거고요, 만약에 상태가 안좋아지면 중환자실로 옮길 수도 있어요.


중환자실이라. 간호사는 해야할 안내를 했을 뿐인데 왜 나는 거기서 아무 말도 못하고 굳어버렸던가. 네, 알겠습니다, 라는 대답으로 통화는 마무리됐지만 근심은 이제 시작이었다.



오후 4시 29분.


혁신적인 문자 메시지 서비스에 의하면 아내가 회복을 시작한지 1시간 37분이 지났다. 아직도 회복 중인게 맞나?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 발생'이라고 문자를 보내주나? 그런 건 안보내줄 것 같은데… 회복 중에서 소식은 멈추고 내가 없는 그곳에서는 어떤 사건이 수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시간 삼십칠 분 동안 난립하는 망상들에 휘둘리다가 마침내 마냥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실질적인 문제 확인 작업에 나섰다. 분만실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아내가 하반신 마취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반신 마취에서 회복하는 시간은 통상적으로 두 시간까지 걸린다고 했다.


두 시간! 회복실에서 두 시간이 걸린다고 왜 진작 말을 안해줘서 무고한 무한대기자의 진땀을 이렇게나 뺀단 말인가. 이건 환자를 기만하는 인류애 상실, 휴먼 라스트 서비스 정신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그들은 늘 하던 일을 하던 것 뿐이고 북치고 장구치는 사람은 나지. 다행이다, 다행이야.



오후 5시 4분.


회복실에서 전화가 왔고 오늘이 추석 연휴 전이라 수술이 몰려 회복실에서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오후 5시 32분.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무사하다. 안도했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수달이의 안녕을 물었다. 나는 환하게 웃지 못하고 건조하게 답했다. 아, 처음에 호흡을 잘 못해서 산소 치료를 하고 있대. 심각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래. 호전되고 있대.



오후 9시 17분.


수달이를 만났다. 간호사는 산소 치료를 잠깐 중단하고 데리고 나온 것이니 면회는 잠깐만 하라고 했다. 수달이는 너무 작았다. 작은 콧구멍이 벌렁 거리는 것을 보니 숨이 모자라나 싶어서 면회를 시작한지 3분 만에 간호사를 불러 수달이를 데려가라고 했다. 괜히 불러서 치료를 방해한 것은 아닌지 자책했다.


병상에 누운 아내에게 잠깐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사진으로는 수달이가 얼마나 작은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작음'에 대한 거대한 충격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수달이 별탈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카페 글 찾아보니 산소 치료는 흔한 거래. 아내와 둘이 병상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다독이며 잠에 들었다. 그게 하루의 끝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수달이의 호흡이 호전되어 산소 치료를 중단했다. 지금은 아주 잘 지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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