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싸우는 동지애를 느끼며
내 손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남자치고 작은 손인데, 그래서 여자손 같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는데 이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얼굴은 새끼손가락 길이만 하고 손바닥으로는 머리를 다 가릴 수 있다. 등판을 더듬어보면 이렇게 작은 몸통에 오장육부가 다 들어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신생아는 모든 게 미니 사이즈다 보니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위장이 계란만 하고 식도에 역류 방지 기능(?)도 장착되기 전이라서 기껏 먹은 젖도 토해내기 일쑤다. 그런 불쌍사를 최대한 없애려면 수유 후에 트림을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부모 몫이다. 트림을 잘 시켜야 아기는 엄마의 젖을 무사히 소화시킬 수 있다.
트림이란 위장에 차 있던 공기가 식도를 통해 배출되는 것인데, 그 작은 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방도가 없는 나로서는 트림시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리원에서 배운 대로 해봐도 이게 트림이 나온 건지 그냥 끙끙거리는 소린지 좀처럼 분간이 되지 않는다. 유튜브에 검색해 봤더니 트림시키는 법에 대한 영상만 수백 개는 족히 되어 보인다. 영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은 다들 고민하고 있는 것이니, 나만 어려운 게 아닌가 보다. 내심 위안을 얻는다. 전장의 동지를 만난 것처럼.
서투른 초보 아빠의 품이 그래도 편안한지 분유를 먹다 말고 잠에 빠진 얼굴이 평화롭다. 잠든 아이의 얼굴은 마치 천사 같다고 누가 말했던 것 같은데 그게 비유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천사 같은 게 아니라 틀림없이 천사다. 편안히 내려앉은 눈꺼풀과 샐쭉 나온 입술에는 경계심이 없다. 숨의 템포에 작게 오르내리는 배봉우리가 아이의 생을 증명한다. 나는 자는 아이의 존재를 하염없이 감상한다. 그리고 경탄한다. 아,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자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내밀한 행위인지, 그리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자는 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아이 말고 또 있을까. 수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잠에 빠진 얼굴 자체를 감상하는 일이란 오묘하다. 잠에 빠진 얼굴에는 변화가 없다. 감은 눈, 규칙적으로 숨이 오가는 코, 살짝 벌어진 입의 형태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만히 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잠든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평화를 맛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 전쟁 같았기에.
두세 시간마다 깨서 젖을 먹어야 하기에 부모도 덩달아 두세 시간마다 몸을 일으킨다.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잠을 재운다. 일련의 과정에 조금의 오차가 생기면, 이를테면, 분유를 반쯤 먹다가 사레가 들러 켁켁대는 바람에 충분히 먹지 못하거나, 기저귀를 뒤늦게 갈다가 잠을 홀딱 깨버리거나, (그 지겨운) 트림이 나오지 않아 시간을 끌다 아이의 눈이 말똥해지거나, 그러면 좀처럼 잠을 재우기가 쉽지 않다. 한참을 안고 있다가 잠에 들었나 싶어서 침대에 내려두면 등에 스위치라도 있는 것인지 눈을 번쩍 뜬다. 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아내와 나는 나름의 노하우를 발견하고 있다. 재우는 작업을 품이 아닌 침대에서 시작해야 한다든지, 분유를 먹다가 잠에 들기 때문에 기저귀는 분유를 먹이기 전에 갈아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육아 선배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겠으나 이제 막 부모가 된 우리에게는 동해에서 유전(油田)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소중하고 반가운 지혜다.
초보 부모는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 배운다. 모르니 열심히 찾아본다. 문제는 정보의 홍수에서 진짜 지혜는 희박하다는 것이다. 저마다 하는 말이 모두 다르고, 하나도 중요치 않은 것들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처럼 부각되어 있다. 이런 것들을 지혜의 채에 걸러 정수만 골라내는 것이 여간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게 아니다. 제대로 걸러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수유하느라 점점 잠이 부족해지고, 몽롱한 잠결에 무지(無知)의 불안과 싸우니 또 각성되어 잠에 쉽게 못 이른다. 떨어진 체력은 마음의 불안을 한껏 끌어올리니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그걸 알면서도 두세 시간마다 몸을 일으켜야만 하는 신생아 돌봄의 시간은 참으로 고되다. 피곤에 절은 얼굴로 아이를 끌어안고 분유를 만들어 먹인다. 뿌엥 울다가 젖꼭지를 야무지게 물고 쪽쪽 빨아먹는 아이의 무결한 생존 본능을 잠시 감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생존을 향한 전쟁은 시작된 것이다. 아이가 젖꼭지를 빠는 모습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아이의 입술에서 삶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나에게 원초적 생의지를 가르친다. 나는 아이에게 무얼 가르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