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
결혼을 바라는 후배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는 게 좋아요?"
나는 대답했다.
취향이나 가치관은 비슷한 사람과 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너무 똑같으면 삶이 단조로워진다,
그러니까 생각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다른 게 좋다.
말하면서도 느꼈다. 비슷한 사람이 좋긴 한데,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니... 참 하나마나한 이야기구나.
집에서 샤워를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 결혼을 반추해 봤을 때, 결혼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결혼 후에야 볼 수 있는 것이 뭐였을까. 그걸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아니, 그전에 결혼이란 뭘까.
아내와 나는 회사에서 만났다. 둘 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호감이 싹텄고, 같은 회사이다 보니 대화할 거리가 많았다. 비밀 연애를 할 때는 새벽안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나누던 대화가 팔만대장경보다 길었다. 그 얘기가 그 얘기였을 텐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즐겁고 또 즐거웠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결혼은 비슷한 사람이랑 하는 게 좋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슷하다고 무조건 결혼이 만족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도서관을 다닐 수 있어 즐겁지만, 그건 하나의 여가일 뿐이다. 게다가 아내가 이직을 해서 이제 같은 회사도 아니다. 비슷한 점이 관계의 시작을 만들고 결혼의 즐거움을 더해줬을지는 몰라도,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아내와 나 사이에는 다른 게 너무 많다. 나는 집에서 몇 주는 꼼짝 않고 틀어박혀 있을 수 있는 집돌이고, 아내는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 한 시간만 있으면 또 나가야 하는 역마살이 있다. 나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안정을 느끼고, 아내는 매일 변하는 다채로움에서 생동을 느낀다. 나는 혼자 처박혀 골몰하고 몰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몇 십 분만 지나도 쪼르르 걸어와 내 집중을 깨뜨린다. 나는 아내에게 간섭하지 않고 맡겨두는 편이지만, 아내는 나에게 사사건건 간섭한다. 서로 다른 점은 이것들 말고도 수두룩하다. 그탓에 아내와 나는 종종 부딪힌다.
그런데 다르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내의 간섭에 짜증이 나다가도 그것이 옳았음이 시간이 지나 밝혀지게 되면, 염치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이를테면 건강 같은 것이다. 나는 건강에 무심하지만 아내는 철저하다. 나는 한 번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기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몸인데도, 아내의 잔소리를 결벽이라고 여겼다. 내 심연 깊숙한 곳에서 용솟음치는 거부 반응이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게 강력한 아내의 불안은 꾸준하게 나를 공략했고, 덕분에 나는 건강해졌다. 아내의 간섭이 적잖이 고통스러웠지만 이제야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사례가 이러한지라, 어떤 다름이 부부에게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참 분간하기 어렵다. 후배에게 했던 조언이 쓸모없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나의 결혼은 어떠했던가. 양가의 도움 한 푼 없이 치렀던 결혼식, 전세 대출받아 마련한 후암동 신혼집, 동네 맛집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즐겼던 산책들, 대한민국 최북단 경기도 양주와 최남단 부산을 오갔던 명절들, 시작은 소박했고 과정은 아기자기했다. 그런 얄팍한 시간들이 수없이 겹쳐졌고 우리 부부는 여기까지 왔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반추하며 '성장했다'라고 느낀다.
성장이라.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함께 협심해 성장하는 일. 결혼이란 회사의 경영과 다르지 않았다. 같은 목표를 위해 모인 구성원이 서로 협력하며 제품을 만들고 매출을 높이는 것이나, 성혼선언문을 읽으며 영원을 맹세한 부부가 서로 협력하며 가정을 만들고 자산을 늘려 가는 것이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아내와 나는 가족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공동 창업자인 셈이다.
직장 생활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예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직장인이라면 좋은 업무 파트너에 대해 체감하고 있을 터였다. 만약 자신이 스타트업 CEO라면 어떤 직원을 선택할까? 통찰로써 문제를 해결할 줄 알고, 소통으로써 의견을 조율할 줄 아는 직원을 뽑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후배들은 당연한 말을 뭐 그렇게 거창하게 하냐고 하겠지. 그런데 그 당연한 원리가 관계 앞에서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통찰 없고, 일도 못하고, 소통에도 서툰 짝인데도 관계의 관성 때문에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꽤 많이 봤다. 헤어지지 못하고 세월에 떠밀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예식장인 것이다.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 소중한 스타트업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결혼에 환상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부터 돈은 많아야 하고, 최대한 갈등은 적어야 하고, 무조건 협조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창업할 때부터 매출 빵빵하고, 아무런 위기도 없고, 격렬한 토론도 없는 스타트업은 없다. 창업을 했으면 성장을 위한 시간은 응당 필요한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골몰한다는 점에서는 결혼이나 스타트업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러니까 짝이 너무 효자, 효녀라서 흠이라는 둥, 그 집이 제사를 지내는 집이라서 맘에 걸린다는 둥,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는 둥 그런 자질구레한 걱정들은 모두 집어치워도 괜찮다. 그 대신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소통 능력이 있는지, 가정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 외부의 잡음에 흔들리지 않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달리는 추진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한 거다. 만약 짝이 그런 사람이라면 이렇게 청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랑 같이 창업할래?"
※ 아! 그전에 더 중요한 것. 본인부터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서 멀쩡한 공동 창업자 고르겠다는 염치없는 소리는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