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하고 그댈 만나러 가

어렵사리 도달한 어깨라인에서

by 조성현

이제 머리카락이 어깨에 넉넉히 닿아 비로소 단발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던 것은 이미 수 년이 지난지라 생각보다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동안 머리카락이 상해서 자르고, 미용실에서 숱을 너무 많이 치는 바람에 자르고, 아내 등살에 못이겨 자르다보니 돌아돌아 지금까지 왔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란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저 내버려두면 되는 것인데도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니, 일면 인생과 닮았다. 인생이란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것인데, 주변에서 도통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니 말이다.

머리를 기르는 수 년동안 어머니의 구박, 장모님의 핀잔, 아내의 회유까지 외면하고 버텼다. 여성들은 그토록 성(性)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해왔으면서, 왜 남성에게는 반대로 그 울타리를 강요하는 것인지. 짧은 머리가 훨씬 예쁘다면서 나를 설득하고 회유하려고 하지만 만만찮은 똥고집을 가진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가볍게 흘려버린다.


머리를 길러보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 것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어쩌다보니 바람이 불었다. 수 년 동안 매우 짧은 머리를 고수해왔고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냥 어느날 머리를 묶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뒤로 묶은 머리는 어딘가 중성적인 느낌이 있었다. 긴 머리로 보이지 않지만, 긴 머리일 수 밖에 없는 머리. 긴 머리라서 다루기에는 번거롭지만, 짧은 머리처럼 단정한 머리. 그 이중성이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아내는 예전 머리가 예쁘다고 말하지만, 전보다 예쁘고 멋지고 싶어서 기른 머리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자를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아, 이제 됐다, 자르자, 라는 마음이 불현듯 솟아오를 때가 올 것이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나에게 물어봐도 소용이 없다.



24D826FD-0E8F-483D-982A-55B72CE018B7_1_105_c.jpeg 아내가 좋아했던 머리. 깔끔하긴 하다.


D5F4A70B-5251-4EB4-84D5-10878360841B_1_105_c.jpeg 이제 이렇게 묶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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