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사진 속 주인공처럼 살아라
100이라는 숫자가 의미 있는 이유는 거기에 대단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인류가 십진법을 쓰기 때문이다.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10이 또 열 개 있으면 100이고, 그게 또 열 개 있으면 1000이다. 그런 식으로 뒤에 0이 하나씩 붙으면 붙을수록 의미는 짙어지고 가치도 올라간다.
그런 의미에서 탄생 이래 가치가 최고점을 찍은 존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딸이다. 딸이 태어난지 100일이 되었다. 병원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손가락으로 열을 세기를 열 번을 하도록 많은 날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임신 8주쯤에 아내와 집 앞 둘레길을 걸으며 "언제 배 나오고, 언제 낳고, 언제 커서 함께 노나"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게 이미 다 지나버렸다는 게 당황스러워서 어안이 벙벙하다가도 찬 바람이 목 뒤를 스쳐가듯 만감이 교차해 깜짝 놀란다. 100개의 날들이 무사히 흘렀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앞으로의 날들이 두렵기도 하고 여전히 설레고 여전히 두려운 것은 100일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다.
백일 사진은 집에서 조촐히 셋이서 찍기로 했다. 많은 아이들이 죽던 옛날이나 백일 생존 기념으로 거나하게 잔치를 벌였지만 요즘에는 간소하게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진찍는 데 필요한 소품을 대여하는 상점들도 생기고 덕분에 편하게 찍을 수가 있다. 아주 잘 정돈된 물품들이 택배로 오고, 다시 택배로 보내면 끝이다. 편리한 세상이다.
딸에게 색동 저고리를 입히고 버선을 신기고 조바위를 씌우니 사랑스러움이 흘러 넘쳐서 내 마음이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솜사탕 같이 몽실한 내 마음은 완전히 녹아버려서 그 안에서 행복하게 헤엄을 쳤다.
의자에 앉히고 셋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관전 포인트는 이 난잡한 상황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딸의 표정과 한껏 카메라를 의식한 아내와 나의 표정의 대비다. 딸은 사진이 무엇을 남기는지 알지 못해서 웃지 않지만 자연스럽고, 아내와 나는 영원한 기록을 위해 웃고 있지만 어색하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많아질수록 어색하고 껄끄러운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돈이든 경험이든 사람이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다다익선 세상이지만, 많을수록 부담스러워지는 게 나이다. 나만 해도 이제 마흔을 넘긴 나이가 되어서 퍽 서운한 기분이 드는데, 이제 백일이 된 딸의 인생은 아직은 부담스러울 게 하나도 없으니 그만큼 부러운 것이 없다. 나도 딸처럼 카메라를 잊고 표정을 잊고 세상을 잊고 나까지 잊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욕심과 고민과 불안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망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딸은 아직 모를 것이다. 훗날 딸이 커서 많은 것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에도 "아빠가 내게 망각하는 법을 알려주었지" 생각하며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고 싶다. 백일 사진 속 딸의 표정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