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자기중심적 사랑을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은 것은 마음의 평화

by 조성현

하얀 화면을 노려보면서 올해 마지막 글을 어떤 내용으로 적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일단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소회를 장황히 늘어놓는,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활기차게 맞이하는 그런 글을 써야 할 것 같아 잠깐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잘 하지 않는 생각이라 영 어색해서 말이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젬병인 내가 연말이라고 그럴 듯한 말을 꾸며내는 것은 맨살에 거친 니트를 입은 것처럼 영 까끌거려서 그렇게는 못하겠다. 하물며 인생에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내가 어찌 연말 따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12월 31일이나 5월 29일이나 7월 14일이나 다 똑같은 하루인데 유독 12월 31일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좀 유치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그냥 똑같은 하루에 똑같은 일상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버리는데, 그래서 내 일상에는 변화가 잘 없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누구보다 의미부여를 잘하는 프로 의미부여러(?)로서 별 말도 안되는 것에도 이런저런 의미를 붙여 축하하고 선물하고 기념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은 말할 것도 없고 별 걸 다 기념하다가 딱히 붙일 이유가 없으면 월요일이니까 기념하고 화요일이니까 기념하고 수요일이니까 기념하고 이런 식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그것마저도 귀찮으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선물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내는 종종 나를 타박하기도 한다. 갑자기 꽃은 왜 안사주냐, 요즘 편지는 왜 안써주냐고 칭얼거린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나도 아내에게 꽃 선물은 받아본 적이 없고, 마지막 편지가 내 편지일 때가 더 많고, 진부한 발렌타인 초콜릿 선물도 받아 본 적은 없다. (언젠가 둘이서 마트에서 장보는데, 빼빼로를 계산대에 툭 올려두고는 계산이 끝나자 나한테 주었던 기억은 있다. 그 날은 빼빼로데이였다.) 가만보니 아내의 의미부여란 본인이 사고 싶거나 주고 싶거나 받고 싶은 게 있을 때만 발동되는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아내의 선물 역시 자기중심적이다. 쇼핑하다가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사왔다며 갑자기 신발, 머플러, 티셔츠 같은 선물을 일방적으로 건네곤 한다. 옷에 대한 취향이 확고한 나로서는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선물들은 하나같이 매일 입는 애착 아이템이 되어있다. 어떤 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아내의 선물만 걸치고 있던 날도 있다.

일주일 전에도 아내가 머플러를 하나 사왔다.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게 마음에 쏙 들어서 이런 저런 옷들과 코디를 했더니, 어느 시골에서 옷감에 염색하시는 장인 같아 보여서 둘이 웃었다. 아내는 여기에는 깔끔한 코트가 하나 필요하겠다며 자기가 좀 알아보겠다고 했다. 내 머플러를 사와놓고선 내 코트를 또 골라주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는 아내가 신기하고 고맙다.


아무리 자기중심적인들 주는 사랑에 감히 뭐라고 토달 수 있을까. 보답은 못할 망정, 의미부여 운운하기나 하고 있고 염치가 없다. 하지만 의미부여라는 게 영 어색한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워낙 변화를 반기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바라는 사람이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게 내 변명이다.

깜짝 선물은 할 자신이 없더라도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아내가 결혼하자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내가 아이를 갖자하지 않았더라면 딸도 없었을 것이다. 물에 물탄 듯 밍숭맹숭한 인생을 보낼 뻔했던 내게 아내는 늘 톡 쏘는 탄산이 되어준다. 덕분에 탄산수라도 되었으니 대단한 것은 못해주더라도 아내의 근심걱정을 시원하게 씻어 내려주고 싶다. 그게 새해를 맞이하며 모처럼 부여한 내 삶의 의미다.


A9DB79EF-5746-493F-8470-05CFFBAC6156_1_105_c.jpeg 아내가 사다 준 머플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짜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