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친구가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산타가 친구의 집 창문을 넘어 들어오더니 친구 아이를 살그머니 쓰다듬는다. 아이는 산타가 온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아이가 이 영상을 보면 적잖이 아쉬워 할 것이다. 산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잠에 드는 바람에 기회를 놓쳐 버렸으니 말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이지만, 만약 내년에 아이가 산타를 보겠다고 밤을 꼴딱 새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AI로 감쪽같이 합성한 영상을 보여주려면 언젠가 잠든 모습이 필요할 테니, 아이가 잠과의 사투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단 1분이라도 꾸벅 졸으면 그때를 배경삼아 영상은 만들어지고, 결국 아이가 잠깐 조는 바람에 산타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것은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는 계속해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할 것이고, 부모는 동심을 위한 낭만적인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쓸 것이다.
나 어렸을 때에도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꼭 머리 맡에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놓여져있었다. 자동차 미니어처 세트일 때도 있었고, 레고일 때도 있었다. 어쩜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만을 콕 집어 사주었다.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으니, 산타 할아버지가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알고 계신다는 노랫말은 사실이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는 좀 허술한 구석도 있었다. 선물 옆에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지내라는 짧은 메시지가 적힌 종이가 있었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꼭 우리집 전화기 옆에 있는 메모지를 썼다. 게다가 글씨체는 우리 엄마 글씨랑 같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늘 "거참, 이상하네." 생각하면서도 선물 포장을 뜯느라 정신이 팔려서는 산타가 엄마일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세상에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온몸에 찬물을 확 끼얹듯 충격적으로 비밀이 공개된 것이 아니라, 일요일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듯 서서히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엄마의 허술한 쪽지 덕분이었을 것이다. "산타는 사실 부모님이야"라는 친구의 말에 산타의 쪽지를 떠올리며 "어쩐지 엄마 글씨 같더라니"라며 눈치채는 식이었을 것이다. 그 후론 산타를 애타게 기다리는 대신 엄마, 아빠의 따뜻한 마음 속으로 푹 안겼으리라.
요즘에는 치밀함을 넘어서 눈으로 봐도 믿을 수 밖에 없이 감쪽같은 증거물을 AI가 만들어주기에 아이들로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겠다. 어른이 봐도 진짜 산타가 진짜 우리집에 들어와서 진짜 아이를 쓰다듬는 것 같으니 말이다.
진짜 믿을 만한 증거를 두 눈으로 확인한 아이들이 믿는 산타는 이제 더이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산타가 아닐 듯 하다. 나중에는 그게 진짜 산타가 아니었다는 증거 - 이를테면 AI로 영상을 제작한 이력이라든가 - 를 내밀고 한바탕 설명을 해야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더이상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지 않는 불가분별성이 만연한 미래가 살짝 두려워지기도 한다. 나에게 진짜인 것이 그에게는 가짜이고, 그에게 진짜인 것이 나에게는 가짜일 때, 우리는 결코 서로를 마주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발전할 AI는 지금의 AI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더 유능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때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은 채 각자의 세상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AI가 만든 산타 영상 보고 이런 생각이라니, 오늘도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가고 말았다.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 아내는 성실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다. 거실 구석에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켜두고, 이제 85일 된 딸의 선물을 사두었다. 크리스마스가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샀을 외투지만, 선물처럼 담고 선물이라고 부르니 거실에 기분 좋은 포근함이 감돈다. 진짜든 가짜든 크리스마스는 즐겁고 낭만적이면 그만인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