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집사의 속사정

우리집 아글라오네마의 꺼지지 않는 열망

by 조성현


아버지는 목요일마다 화분을 만들어 왔다. 요양병원에서는 화분 만들기를 심리 치료의 일환이라 말했지만, 내심은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이 일과인 암 환자들의 시간 죽이기를 도우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심은 아글라오네마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글라오네마의 붉은 잎은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화분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눈에도 불꽃 같은 삶에 대한 열망이 이글거렸다. 아버지는 거울에 비친 앙상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줄곧 중얼거리곤 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결국 아버지는 해내지 못했다. 퍼석하게 타들어간 이파리 같은 육체만 남기고 증발해버렸다. 아버지 대신 아글라오네마가 붉은 잎을 하늘로 향해 이글거리며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정작 식물에게 숙명을 안겨준 이는 사라졌으니 그 투지는 말할 수 없이 공허했다. 하지만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유품이자 유언인 그 공허한 외침을 있는 힘껏 보존하기로 했다.

일주일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던 날, 현관을 들어가자마자 마치 사건 현장 최초 발견자처럼 비명을 질렀다.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불 타오르던 아글라오네마의 줄기가 왜인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근육과 지방을 모두 소진해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가 당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것만 같았다. 아글라오네마가 죽은 줄 알고 화분을 끌어안고 울었다. 아버지의 두 번째 죽음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서둘러 화분을 들고 근처 꽃집에 갔다. 직원이 꼼꼼히 분갈이를 해주고, 구부러진 줄기에 버팀목을 대어 세워 주었다. 과습이 문제라고 했다. 환기를 잘 시켜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다행히도 아글라오네마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화분은 단 하나 뿐이었고 그 사실이 한없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만약 아글라오네마가 죽는다면, 붉은 잎에 아직 타오르고 있는 아버지의 투지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분을 둘로, 셋으로 분화(分化)하기로 했다.

소독한 칼로 줄기를 잘라 물에 꽂아두었더니 뿌리를 내렸다. 원래 있던 뿌리에서는 새 줄기가 올라왔다. 하나였던 화분이 두 개가 되자 한결 안도했다. 화분이 세 개가 되었을 때는 더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이제 세 개의 화분이 저마다 외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제 소멸하지 않을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생각했다. 적어도 셋은 있어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게 바로 가족의 핵심이라고. 하나가 사라지면 다시 혼자가 되는 둘은 너무 위태롭다고. 그러니까 셋이어야만 계속될 수 있는 거라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뿌리를 내려 나와 동생으로 분화(分化)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아글라오네마였다. 아버지가 흩뿌린 새 화분에서는 내가 곧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 안에서 영원한 것이었다.


본체는 어머니 댁으로 보냈다. 이제 네 개의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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