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맨처럼

힘이 필요하다면 나를 먹어

by 조성현

내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무의식의 시간, '잠'이었다. 빠지는 순간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지는,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죽음의 한 조각이라고 했던, 잠이란 일면 공포스러운 것이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한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삶에 충실한 가장 직관적인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눈은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 터진 실 핏줄이 죽음으로 향하는 네비게이션 안내선인 줄도 모르고.

출근하면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는 것이 가엾어 보이기까지 했다. 얼마나 졸려울까. 물리적으로 사무실에 존재해야만 하기에, 세상에서 사라질 수 없는 현실이 얼마나 고달플까. 조금 일찍 자면 될 것을. 쯧쯧. 속으로 혀를 차며 잠에 인색한 동료들의 우매함을 개탄했지만, 그들의 궁핍이 결코 그들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시간은 출퇴근길에 빼앗기고, 유튜브에 빼앗기고, 소주에 빼앗겼으므로 그들은 갈취당한 피해자였던 것이다.


나 역시 상습적으로 강탈당하던 때가 있었다. 그 고약한 녀석은 바로 일이었다. 애자일 문화를 도입한답시고 조직 구조를 기형적으로 바꿔놓은 탓에 내게 일이 몰렸고, 혼자서 내년도 사업부 경영계획을 짜던 때가 있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고, 샤워하면서도 심지어 꿈 속에서도 일에 파묻혀 있던 어느 날, 기어이 사단이 나고 말았다. 내 오른쪽 얼굴과 사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었고, 그 원인이 뇌출혈이었다는 것을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알게 되었다. 그 날 새벽 두 시, 응급실 병상에 누워서 충격에 빠진 아내에게 한다는 말이 "내일은 진짜 출근해야해.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어."였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그 때의 나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 이후로는 잠에 후해졌다. 밤 열시에 잠자리에 누웠다. 알람은 맞춰두지 않았다. 눈이 떠지면 그때가 하루의 시작이었다. 내 몸이 필요해하는 만큼 자고 일어나면 하루의 질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때, 잠이란 죽음의 한 조각이 아닌, 삶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이 없으면 삶도 없는 것이었다.


잠에 소홀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서 부터였다. 딸의 사이클이 나의 것과 다르니 예상했던 바이지만, 벌써 네 달이 지났는데도 적응이 쉽지가 않다. 새벽에는 수유를 하기 위해 일어나야만 하고, 한 번 깨어나면 다시 잠에 들기도 어려우니 하루의 시작이 새벽부터 어긋나버리고 만다. 깨어있는 시간이 늘었지만, 잠을 잃었으니 삶도 잃어버린 셈이다.

솔직히 말하면 삶을 빼앗기는 게 억울하다. 어떻게 부모가 억울하다 할 수 있느냐고 질책한다해도 솔직한 마음이 그렇다. 육아의 성스러움은 현실에서 박살난다. 육아가 마냥 행복하고 낭만적인 것이라면 산후우울증이라는 흔하디흔한 클리셰가 왜 계속 반복되는 것이겠는가. 아기가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육아는 압도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억울하긴 해도 그 희생을 기꺼이 견디고 있다.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 머리 한 쪽을 떼어주는 호빵맨처럼 내 것을 나누어 준다. 불완전해진 하루를 보내고 잠을 그리워하면서도, 딸의 얼굴을 부비며 웃고 사진을 찍고 먹이고 재운다. 억울한 것은 억울한대로 남겨두고, 딸에게 내 것을 나눠줄 뿐이다.


405B38D4-78A8-46A1-9048-5AC1292302DD_1_105_c.jpeg?type=w1 밀가루로 만든 호빵맨~ 다정한 친구 호빵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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