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고통

우리는 모두 힘들다

by 조성현

우리는 두 번의 유산을 경험했다. 내 주변에서도 유산이 드물지 않았기에 첫 번째 유산은 애써 스스로 위로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늦어진 여성의 출산 시기 탓에 유산은 흔하다고, 그래도 한 번 유산하면 두 번째는 착상이 잘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 말은 과거의 슬픔 위에 있었으나, 미래의 기쁨을 품고 있었다. 그 위로 한 마디에 기대어 울고 눈물에 슬픔을 흘려보냈다.

두 번째 유산이 되었을 때는 울지 못했다. 분명히 들렸던 심장 소리가 세상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는 상실감과 어쩌면 무언가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굳어버렸다. 한가롭게 울 시간도 우울해할 여력도 없었다. 난임 병원에서 칠십만 원짜리 혈액 검사를 하고 몇 가지 처방을 받았다. 아내가 고생을 다 감내해 준 덕에 일 년 뒤, 건강한 딸을 만났다.


며칠 전에 군대 동기들을 만났다. 한 녀석이 결혼을 하노라며 청첩장을 건넸다. 거기 모였던 전우들은 네 번째 유부남의 탄생을 축하했다. 신부가 될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군대 이야기를 하다가 육아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군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무심코 아직 아이가 없는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애 언제 가질 거야?"

"아, 시험관 하고 있어."

친구는 작년부터 시도했는데 아이가 생기질 않았노라고 했다. 조금 전에 육아가 얼마나 고된지 신나게 떠들었던 게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친구는 별로 말이 없었다.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유산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도 참 힘들었었다고, 요즘은 난임 기술이 좋으니 잘 될 거라고, 제수씨 힘들 텐데 네가 잘해주라고. 왜인지 말할수록 점점 더 미안해지기만 했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친구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육아 힘들어도 되니까 생기기만 했으면 좋겠어."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꿈'이라는 말이 극적인 격차가 도드라질 때나 쓰일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란스럽게 웃고 떠들던 삼겹살집 안에서도 유효했다. 육아가 죽도록 힘들다고 떠들어대던 나를 그 친구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부러워했을까, 재수 없었을까, 아니면 슬펐을까.

집으로 돌아와 다시 육아 전선에 투입되자 그런 생각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육아의 고통은 잡념을 압도한다. 다른 이가 나의 고통을 부러워한다고 해서 내 고통이 누그러지는 것은 아니니, 나는 별수 없이 내게 주어진 고통을 감내한다. 아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힘든 것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힘든 것이다. 저마다의 고통이 다를 뿐, 누가 더하고 덜한 게 없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고생했다.


6A7E8AC3-13D8-4FB7-BFEE-0052322E2627_1_105_c.jpeg?type=w1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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