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와의 외도

김밥아 미안해

by 조성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김밥이요."라고 답한다. 다양한 반찬들이 고루 있고, 먹기도 편하고,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한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맛까지 있는 이 음식을 나는 감히 지구 최고의 음식이라고 칭하고 싶다. 요즘 K푸드의 인기에 힘입어 외국에서도 킴밥(Kimbop)의 인기가 높다던데, 아무리 문화권이 달라도 맛있는 건 감출 수가 없구나 싶어 괜히 뿌듯하기까지 하다.

김밥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한 번에 다양한 맛이 입안에서 섞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입에 퍼지고, 밥의 은은한 단맛을 느낄 때쯤 짭짤하고 달콤하고 감칠맛 나는 속 재료들이 하나씩 치고 들어온다. 혹여나 멸치나 불고기 같은 다른 재료가 들어갔다면 변주는 끝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식은 샌드위치다. 샌드위치의 매력은 김밥과 매우 유사하다. 탄수화물 안에 온갖 부재료들이 채워진 이상 다양한 맛이 섞이는 순서와 조화가 김밥의 그것과 다를 리가 없다.

샌드위치가 김밥을 훌쩍 능가하는 매력이 하나 있는데, 그건 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집에서 김밥 한 줄 싸려면 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야채들 볶아야 하고, 계란 부쳐야 하고, 참기름에 밥 비벼야 하고, 김 깔고 싸는 것도 보통 능숙함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샌드위치는 데운 빵에 온갖 재료들을 차곡차곡 넣기만 하면 끝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김밥보다는 샌드위치를 많이 먹는다.

그래서 집에 손님이 왔을 때도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한다. 손님맞이 음식으로는 너무 간소한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좋은 재료들로 만들면 고급스러움이 정찬 못지않다. 몇 주 전의 두 명의 손님을 위해 재료만 십만 원을 훌쩍 넘게 썼다. (물론 아내와 나도 먹었지만.) 그라파다노 치즈가 뿌려진 화덕 브레드에, 프로슈토와 하몽을 섞어 올리고, 카망베르와 프로볼로네도 얹고 하다 보면, 샌드위치 단가는 결코 서민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다. 물론 그만큼 맛도 고급스러워지니 불만은 싹 사라진다.


오늘은 엊그제 연희동에서 사 온 치아바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구운 빵에 바질 페스토와 마요네즈를 바르고,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올리브유에 버무린 루꼴라를 듬뿍 넣고, 햄과 계란을 구워 넣고, 당근 라페를 듬뿍 얹었다. 만들기는 별것도 아닌데 맛은 결코 별것이 아니다. 단언컨대 누가 먹어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맛이다.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으니, 내일은 또 어떤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까 생각하는 게 일상의 즐거움이 된다. 이건 확실히 김밥은 줄 수 없는 행복이다. 김밥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샌드위치와의 이유 있는 외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아마 김밥도 이해해 줄 것이다.


CC767365-D3B3-47BC-8FF7-DE8BEF3A8B24_1_105_c.jpeg?type=w1 두 가지 종류의 치아바타에 같은 재료.


F439EFD0-AA2B-4BCD-83B5-F6D8580872C6_1_105_c.jpeg?type=w1 의외로 제일 좋아하는 조합은 아보카도와 올리브유로만 만든 심플한 오픈 샌드위치.


00A16BFF-7BED-4577-9D87-D5EB20E1DE5E_1_105_c.jpeg?type=w1 재료를 아무리 많이 넣어도 꾸욱 눌러 먹으면 다 들어간다.


84906FA0-8D71-42FD-A42F-1B752A5FCE1D_1_105_c.jpeg?type=w1 손님을 위해 열심히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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