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없애지 못해서 걱정
지금 여수에 와있다. 아내와 딸은 서울에 남겨둔 채로 나 혼자 떠나왔다. 현관을 나설 때까지 발이 떨어지질 않아서 괜히 집 안을 돌아다니고 딸을 안고 하다가 그러다 늦는다는 아내의 추궁에 못이겨 집을 나섰다. 등에는 백팩을 하나 매고, 손에는 옷이 가득 들은 커다란 더플백을 들고 버스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여수에 도착할 때까지 중요한 뭔가를 놓고 온 듯한 불편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아내는 장모님이 있으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혼자가 낯설어져 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의 육 개월 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강매(?) 당해버렸다. 원래는 그마저도 완강히 거절할 생각이었다. 이 주 전에 일본을 다녀온 아내는 내게도 여행을 권했다. 하지만 원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그냥 집에 있겠다고 했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고, 그럼 해외 말고 국내 호텔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오기로 설득 당했다. 전광석화 같이 열차 티켓이 발행되었고, 아내로부터 여수행을 통보 받았다.
못이기는 척 여행을 가기로 했지만 막상 오늘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려 왔다. 워낙에 수면 가뭄에 허덕이고 있던터라 호텔에 가서 잠이나 푸지게 자고 와야겠다 생각하니 푹신한 호텔 침대의 유혹을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그렇게 디데이가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육아 해방의 맛이 얼마나 달콤할까 상상했다. 여수로 떠나는 날에는 훨훨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훨훨 날기는커녕 발이 무거워 한걸음한걸음 떼기도 벅찼고, 육아 해방의 맛은 달콤한 게 아니라 찝찌름했다. 아,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되는데.
체크인을 하고 우선 짐부터 풀었다. 가방에는 어제 아내가 챙겨준 옷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있었다. 어젯밤, 아내는 파우치들을 하나씩 들어보이며 속옷과 잠옷은 여기에 있고, 운동복과 티셔츠는 여기 있다고 내게 설명했다. 정작 여행을 가는 나는 풀이 죽어있고, 집에 남아 딸을 봐야하는 아내가 신나있는 이 광경이란, 누가 보면 오해할 만큼이나 우스꽝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짐을 푸는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아, 일 박만 할 걸 그랬나.
아내와 통화를 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 걱정도 말고 푹 쉬고 오래이." 장모님의 음성이 들렸다. 말로는 그러겠다고 감사하다고 답했지만, 도착한지 몇 시간이 된 지금까지도 푹 쉬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면 여기까지 내려온 이유도 없고, 아내와 장모님이 고생하는 보람도 없는 걸 알아서 더 초조해진다. 더 늘어져야 해, 더 풀어져야 해, 그래야 다시 육아 전선에서 힘내지. 라는 독백은 호텔 방 안에서 조용히 맴돌 뿐이다. 벌써 아내와 딸이 보고싶다. 이를 어쩐다.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