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빈티지를 입는 이유

곁에서 우쭈쭈하는데 입지 않을 수가 있나

by 조성현

며칠 전에 딸의 영유아검진을 위해 소아과에 다녀왔다. 소아과가 있는 건물은 연식이 조금 있는 기계식 주차가 필요한 곳이었다. 기계식 주차 건물이 그렇듯 거기에도 주차 관리인이 있었다. 주차를 하려고 다가가 창문을 내렸더니, 관리인이 물었다. "어디 오셨어요?" 내가 대답했다. "소아과요." 관리인이 잠깐 멈칫하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어지는 말. "아, 공사하러 오신 게 아니고요."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내 행색을 보고 공사하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맙소사.


이십 대 초반부터 빈티지를 즐겨입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빈티지라기 보단 구제였다. 주로 광장시장에서 곰팡내 나는 옷더미들을 뒤지며 옷을 샀다. 얼마나 오래 숙성(?)되었으면 손으로 잡아 당겨도 죽죽 찢어지는 청바지도 있었다. 뭐에 그렇게 미쳤었는지 이런 게 진짜 구제라며 다 떨어진 바지를 줄기차게 입었다. 몇몇 친구는 나를 거지같다고 하기도 했다.

거지에 비하면 공사 인부는 양반이다. 빛 바랜 바지에 부츠까지 신었으니 그렇게 보였을 법도 했다. 일도 없이 구걸하는 거렁뱅이가 아닌 성실하고 긴요한 노동자로 보아주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실없이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먼저 차에서 내려 주차를 기다리던 아내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같이 웃었다.


여전히 내 옷을 보고 웃지 못하는 사람들은 역시 어르신들이다. 아버지가 내 옷들을 보고 옷 좀 사입으라며 용돈을 주셨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돈을 받아들고 그대로 광장시장으로 가서 구제 옷을 또 샀다. 장모님은 왜 깔끔하고 멋진 옷 두고 그런 옷을 입냐고 한 마디씩 하신다.

대신 든든한 내 편은 따로 있다. 바로 내 아내다. 알고 보니 아내도 부산 국제시장에서 구제 깨나 사 입었단다. 한 달 전, 도쿄 여행을 다녀왔을 때에도 온갖 빈티지 옷들을 사다가 내게 선물이라고 건네주었다. 오늘은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코디가 맘에 든다며 이리저리 사진도 찍어주었다. 아내가 곁에서 그리 우쭈쭈 해주는데 입지 않고 배길 수가 있을까. 내가 빈티지를 입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416CB0DF-B01A-44CA-8C97-B6C424B6F86A_1_105_c.jpeg?type=w1 그나저나 한강공원에는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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