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글지 않은 것

빛을 향해 네 몸을 활짝 펴보이렴

by 조성현

안산 산자락이 물들고 있다. 초록물, 노랑물, 하양물, 모두 밝은 빛으로 물든 이유는 계절에 아침이 왔기 때문이다. 겨우내 한껏 웅크렸던 봉오리와 새싹들이 아침 해를 보고 잠에서 깬다. 꽃봉오리는 꽃잎 벌려 하품을 하고, 풀잎은 잎을 내밀며 기지개를 켠다. 언제 봄이 오나 싶었는데 이제는 확실해졌다. 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연두색 새잎들이 엉성하게 가지를 채우고 있을 때다. 그 잎들은 커다란 나무를 모두 덮기에 너무 연약하고 작아서 위태롭다. 손가락으로 툭 튕기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가냘프게 달려있다. 그런데 살짝 건드려보면 그 단단함이 예사롭지 않다. 작고 연한 것이 아주 야무지게 가지를 붙들고 있다.


딸은 이제 뭐만 있으면 손을 내밀어 꽉 잡는다. 얼마나 옹골지게 잡으면 그 작은 손가락에 피가 돌지 못해 하얗게 된다. 이제 아무거나 잡아대기에 내가 딸의 손에서 물건을 뜯어내기를 자주 하게 된다. 하찮은 손 크기를 보고 대충 당겼다가는 어라? 만만찮은 딸의 힘에 당황한다. 이제 6개월 된 녀석 힘이 제법이다.

만개하는 생명체에게는 힘이 충천하다. 응축된 힘은 제 몸보다 몇 곱절이나 크다. 덕분에 어린 친구들은 제 몸을 온전히 감당해낸다. 예전에 클라이밍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 우스갯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클라이밍 장에서 어린아이를 보고 "어머, 저런 꼬마도 클라이밍을 하네."라고 했다가 벽 타는 것을 보고는 형님, 언니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아직 영글지 않은 것들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아직 몸이 작아 우스워 보일 뿐, 그 안의 것은 결코 우습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렇기에 연두색 새잎에게 미소와 건투를 보낸다. 이제 네가 기다리던 봄이니 빛을 향해 네 몸을 활짝 펴 보이라고. 너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다시 밝게 비춰달라고. 오늘 밤 곤히 잠에든 딸을 보며 그렇게 읊조려본다.


BBC9EC7F-0E14-4367-9000-DA28FC57C91C_1_105_c.jpeg 집 앞의 산이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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