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낭만이 있는 시테섬
나는 6을 좋아한다. 내 생일의 일자가 6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내와 나를 연결시켜 준 결정적 숫자이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어릴 적부터 종종 보를 내시고 손가락을 접어 숫자를 세시면서
“민욱아, 자, 봐봐. 6부터 손가락이 펴지지? 6은 피는 숫자야.”
‘아버지 주먹으로 시작하면 6은 접히는 숫자가 되는데요...’라고 마음속으로만 말하고 반박한 적은 없다.
아니 사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점을 꽤 닮았다. 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편하고 좋다.
파리 여행 여섯 번째 이야기. 확실히 이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낯선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하고 잘 해내는 척하고 그러다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상황이 연출되고...’나’라는 이야기의 주인공다움이 도드라졌던 하루였다. 특히 마무리가 아주 좋았다. 아주.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기로 하고,
아침을 컵반으로 때우고 일정을 시작했다. 첫 관문부터 녹록지 않았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해외 출장 가셔서 엽서를 보내셨던 게 생각이 나 이틀 전 기념품샵에서 예쁜 엽서를 몇 장 샀었다. 컵반을 먹으며 구글에 ‘파리에서 엽서 보내기’라고 입력한 후 몇 개 글을 읽자 자신감이 붙었다. 간단해 보였다.
파리에서 엽서 보내기
아내에게 먼저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아 엽서를 꽉 채웠다. 그러고 나서 다른 디자인의 엽서에 은하야(딸의 이름)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그 엽서 오른쪽에 줄이 그어진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아뿔싸, 주소.
사랑을 지나치게 꾹꾹 눌러 담은 아내의 엽서에는 주소를 쓸 공간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올라와 일단 은하와 이건이(아들) 것을 먼저 쓰고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내 것만 봉투를 사서 넣고 거기에 주소를 써 보내자고 생각을 정리했다. 똑똑한 자식.
근처 문구점에 가 봉투만 파냐고 물었지만 안 판다길래 사이즈가 비슷한 카드를 사고 우체국을 검색해 찾아갔다. 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한국 우체국에는 다 있는 풀 혹은 테이프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전전긍긍해하며 우체국 직원에게 풀 있냐고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일을 보러 온 사람들도 많고 나와 대화할 시간이 없어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우편 접수 기계에 일단 은하와 이건이 엽서를 각각 무게 달고 결제하고 송장 스티커(?) 붙이고까지를 마친 후, 애꿎은 카드 봉투만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think, think를 되뇌며 불쌍한 눈빛으로 직원과 눈을 맞추려고 애쓰던 중 봉투에서 반짝임을 느꼈다. 이거슨 설마...! 천군만마를 얻은듯한 기분이었다. 카드 뚜껑(?) 안쪽에 침 바르면 접착력이 생기는 이름 모를 그것이 발라져 있었다.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대안이 없었다. 믿고 싶은 걸 믿어야 했다. 얼른 혀를 댔다. 단 맛이 낫다. 혀가 마른 것 같아 침샘을 한껏 자극하고 최대한 길게 빼 래브라도 레트리버처럼 브이자를 그리며 핥았다. 그리고는 꾹 눌렀다. 붙었다. 훌륭한 접착력이었다. 또 해냈어, 너란 녀석.
상당한 만족감으로 우체통에 넣는 순간, 불안해졌다. 접수 기계로 진행한 것들이 제대로 한 게 아니라면? 한국으로 무사히 날아갈까? 됐다, 걱정해 뭐해. 우체통에 팔을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나 해 미리 사진 찍어두긴 했으니까.
(*사진 찍어두길 잘했다. 당시 나의 불안함에 부응이라도 한 듯 여행 중 작성했던 이 글을 윤색 중인 오늘, 그러니까 엽서를 보낸 날로부터 13일이 지난, 내가 귀국하고도 5일이 지난 오늘까지 엽서는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가본 가장 예쁜 동네, 시테
지하철을 타고 시테섬으로 향했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거닐어도 어마어마한 것들을 만날 것 같아 우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 들렀다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시테 역을 놓치고 두 정거장 지나 어쩌고 저쩌고 역에 도착했다. 시테섬 인근을 다 다니고 싶은 날이었으니 그냥 내려서 시테섬을 향해 걸었다.
누군가 그랬단다.
파리에서는 길을 잃어도,
파리라고.
예상과 달리 날씨가 너무 좋았다. 걷다가 끌리는 곳이 있으면 시티 매퍼 앱 안내 경로를 마구 이탈해가며 이곳저곳 걸었다. 나는 주로 성당에 끌렸다.
파리의 성당 건축 자체가 일종의 종합 예술 전시장 같은 느낌이 있는 데다 그 압도적 홀리함은 한동안 천주교 신자였던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걷다가 눈에 띄는 건축물이 있으면 구글 지도를 확인해 픽토그램을 터치해 기본적인 정보를 얻고 들어가 보는 식이었는데, 구글 지도에 ‘지금 여기에 있나요’라는 항목이 있어 터치해보니 내 방문 일자와 시간이 기록되었다. 내 발도장을 찍는 기분. 그 재미를 알아버렸다. 들어갔다 나와서는 두 세줄의 방문 경험을 남겼다. 그렇게 전 세계를 누비고 싶어 졌다.
<비포선셋>의 그 서점에서
두 곳의 성당과 이런저런 가게들과 어딜 봐도 예쁜 길들을 지나 서점에 도착했다.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기준에서는 좀 민망한 인증샷을 찍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언어가 익숙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가 눈에 들어왔다. 표지의 묠니르가 반짝이고 있었다. 책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당연히 사야지로 바뀌었다. 일단 <북유럽 신화>는 집에 번역서가 있으니 보류하고 둘러보았다. 곧 second-hand books라는 작은 책장이 눈에 들어왔고 거기서 한 권 사기로 결심했다. 누군가에서 누군가의 손을 거쳐 세계를 여행하는 책이 되겠구나. 내가 그걸 돕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두꺼운 책은 부담스러웠고 얇은 책 위주로 찾는데 H.G. 웰즈의 <우주 전쟁>이 있었다. 원픽. 한 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중고책만 사는 것도 좀 그랬고. 더 얇은 책을 찾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상당히 작은 서점처럼 보였는데 안으로 구불구불 구석구석 다양한 책들이 많았다. 특히 소설의 비중이 컸다. 장르 구분으로 치면 영어덜트의 비중이 가장 컸던 것 같고 그다음으로는 SF,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 크라임은 한데 모여 있고 호러도 있고. 내가 지나쳤는지 모르겠지만 로맨스나 판타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어디 있긴 했겠지. 픽션이라는 코너도 따로 있었는데 영미권의 픽션과 기타 장르의 구분은 어떤 기준이며 어떻게 다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처럼 순문학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고 장르적 쾌감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드라마를 포함한 기타 다양한 범주의 작품을 픽션으로 구분해 놓은 것 같았다. 다음으로 큰 카테고리는 시였던 것 같다. 시집들이 놓여 있는 곳은 작은 방처럼 아늑했는데 영미문학의 다채로움과 성취가 부러웠다.
좁은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올라가 보니 BGM으로 흐르던 피아노곡이 실제 누군가에 의해 연주되고 있었다. 서점 측의 연출 방식인 건지 손님이 놓여있는 피아노를 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묘한 느낌을 주었다. 2층 다른 쪽에서는 질감이 따뜻해 보이는 의자에서 고양이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랑 닮은 고양이였다.
세 권의 책에 서점 도장을 팡팡 찍어 봉투에 넣어준 것을 들고 나와 바로 옆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카페에 가보았다. 야외 테이블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보수 중인 노트르담 성당을 한가로이 바라보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었다. 배가 좀 고파 무언가를 먹기로 하고 걷기 시작하는데 몇 발짝 채 걷지도 않아 호객하는 레스토랑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서점 카페에 다시 올 거라 멀리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몇 마디 나누고 들어갔다.
파스타와 맥주를 시키고 앉아 있으니 파리 와서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고 평안한 행복이 느껴졌다. 버섯과 닭가슴살이 들어간 크림 파스타를 시켰는데 짭조름한 것이 맥주와 딱 맞았다. 두 잔 마셨다. 살짝 알딸딸해졌다.
이제 슬슬 파리지앵 흉내를 내는 것 같은
배가 불러서 나오니 카페에 바로 가기는 그래 걷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 노트르담 성당 앞에 갔지만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어 뒤돌아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되었었다는 형무소 옆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생트 샤펠에 가게 되겠거니 했는데 퐁네프 다리에서 셀카 찍고 어쩌고 하다가 생트 샤펠의 존재를 잊어버렸고(미쳤지ㅜㅜ 결국 다음 날 갔다)
여전히 배가 불러 구경삼아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왔던 레스토랑 ‘폴리도르’에 가보기로 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가보니... 별거 없다는 느낌이었다. 저녁 준비 시간인지 문을 닫고 있어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지만 굳이 나중에 다시 와서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오는 길에 길과 길 사이 뭔가 어마어마한 건물을 보았기에 구글 지도를 켜고 뭔지 확인했다. 뤽상부르 공원이었다.
어마어마하지만 심플한 공원이었다. 뤽상부르궁과 대규모 정원으로 이루어진. 궁은 앙리 4세가 죽자 루브르 궁이 싫었던 왕비 메디시스가 고향 피렌체의 피티 궁전을 본따 새롭게 지은 것이라는데 나는 정원이 더 좋았다. 그곳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기 좋았다.
나는 잠시 등받이가 뒤로 많이 기운 철제 의자에 앉아 서점에서 산 책을 꺼냈다. 록산 게이가 추천했다는 <페미니스트 선언(?)을 위한 15가지 제안>. 안 되는 독해로 서문을 더듬더듬 읽어보니 누군가 저자에게 딸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방법을 몰라요 라고 저자에게 물어봤고 그것이 책을 쓴 계기라는 것 같았다.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어 공부는 이 책을 은하가 잠들기 전까지 두 페이지의 내용을 독해하고 들려주는 것으로 하고 그럼으로써 은하에게 검사받는 시스템까지 갖추게 되니 딱딱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공원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 그제야 생트 샤펠을 놓친 것이 생각났지만 관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카푸치노를 마시러 갔다.
여전히 자리가 없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살짝 튀어나온 선반과 의자가 있는데 그곳이 비자 얼른 자리를 맡고 주문했다. 거기서 조금씩 홀짝이며 전 세계에서 와 좁은 가게를 바글바글 채운 사람을 보고 있으니 그냥 모두가 다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뜬금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얼마 안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있었다. 저녁을 먹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체크한 후 톨비악 역으로 가 쌀국수를 먹기로 했다. 거리는 걸어서 45분 거리. 지하철을 탈까 하다가 뭐래 나 파리 관광 온 거잖아. 이방인에게는 발길 닿는 모든 곳이 볼거리지 하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잘한 결정이었다. 걷다가 예쁜 가게 혹은 흥미로운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 보고 또 어떤 성당을 발견해 들어가 보고
그 앞에 시장이 너무 예뻐서 사진 찍는데 비가 와 몸을 피한 곳에서 은하와 이건이를 위한 발레 그림 퍼즐과 소방차 그림 퍼즐을 득템하고, 나는 파리에서 운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로터리 건너기를 시도하다 어느 순간 보니 인도는 사라지고 내가 차도 위에 서있어서 앗 뜨거워 하고 되돌아오고... 상당히 엔터테 이닝 한 여정이었다.
파리의 베트남 쌀국수 맛은 강렬했다
파리 13구는 그래도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와 있어 확실히 매력은 덜하구나 싶으면서 일종의 아시아타운인지 다양한 아시아 식당들-심지어 그 매운 훠궈 식당까지-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으슥한 곳에 있는, 6의 날의 대미를 장식할 쌀 국숫집 Pho tai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겉에서 보던 것과 달리 어마어마하게 붐볐다. 문 앞 바로 앞자리 외에는 앉을 곳이 보이지 않았다. 앉을까 하고 보니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테이블에 앉을 틈이 없었다. 주저하고 있자 직원분이 오셔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테트리스 블록 하나를 빼내는 것처럼 테이블을 빼시더니 들어가 앉으라는 사인을 주었다. 앉으니 테트리스 블록이 끼워 맞춰지듯 내 배를 향해 테이블 모서리가 생각보다 깊이 밀려 들어왔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어드벤처물에서 벽이 밀려오는 것 같은 스릴이 느껴졌다. 손으로 막아 벽을 멈추었다. 옆에는 나보다 먼저 혼자 와서 먹은 여자 손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음식을 다 먹고 누군가 구해주기를 바라는 느낌으로 앉아 있었다. 직원이 와 블록을 빼주자 일어나 나갔다. 그 모습이 웃겨서 재미있어하고 있는데 그때 나에게 직원이 자리를 옮기면 어떠냐고 물었다. 어느 자리인가 보니 저 반대편 벽 쪽에 두 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 넓은 자리가 생겨 옮겨주나보다싶어 굿, 굿, 이라고 답하고 가서 앉았는데... 거기서 일어난 두 사람이 다 먹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는 것 아닌가. 그러면 내가 일어난 자리가 그나마 나은 자리였다는 건데 뭐지? 하고 앉아보니 바로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잔잔한 교훈을 얻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은 변화는
나를 위한 배려이기보다
누군가를 위한 손해일 확률이 높다
앉자마자 양옆으로 테이블이 맞춰지면서 커플 손님들이 마주 보고 앉았고 나는 그 사이에 끼인 것이다. 양쪽 손님은 나보다 조금 늦게 온 이들이었는데 이들 중 어느 한쪽이 나가지 않고서는 블록을 옮길 여유가 전혀 없어 나는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옆으로도 뒤로도 앞으로도 테이블이 움직일 조금의 틈도 없었다. 쌀국수에 맥주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혼자 배를 채우러 온 내가 데이트를 하러 온 자들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괜찮았다. 나는 시간이 많으니...
쌀국수는 과연 맛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너무 빨리 먹어버린 것이다. 아니 애써 천천히 먹으려고 하는데 양 옆은 전 세계에서 가장 대화가 잘 되는 커플이 온 듯했다. 왼쪽은 흑인 커플, 오른쪽은 동남아 부부(인 것 같았다). 국물이라도 천천히 끝까지 음미하는 모드로 가고 있는데 내 상황을 모르지 않을 직원분이 쌀국수 그릇을 치워주었다. 영어가 안 통했다. 베트남어와 불어만 쓰는 것 같았다. 휑한 테이블에서 맥주를 티스푼으로 뜬 것만큼씩 한 모금 한 모금하며 아무렇지 않게 여유를 즐겼다. 내가 나가겠다고 하면 좌우로 모두가 다 일어나야 했으므로 나가라는 얘기는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우아하면서도 괄괄한 느낌의 여자 사장님은 사정 다 안다는 듯이 나를 향해 씩 미소 지어주었다. 나도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노 프로블럼임을 표현했다. 문제는 직원들이 프로페셔널했다. 사람들이 계속 밀려드는데 빈 테이블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디저트를 시킬 거냐고 물었다. 먹을 생각도 없던 맥주까지 마신 데다 국물로 버텼던 시간도 있었기에 배가 너무 불렀다. 거절을 하고 남은 맥주에 입술을 적시기를 반복하면서 양 옆의 커플 중 어느 한쪽이 어서 속도 경쟁에서 이기기를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삼 심 여분을 보내고 신기하게도 모두가 다 같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게 되었다. 거의 일행이 된 기분이었다. 난 거기서 두 인종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한 것이고...
밖으로 나오니 급격히 추웠다. 꽉 찬 식당에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샌드위치로 끼어 있었던 데다 상황상 계속 흘릴 수밖에 없었던 땀이 한 번에 확 식은 것이다. 걸음을 재촉해 지하철을 탔다. 이제 지하철 타기는 너무 능숙해져 술기운과 함께 만족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숙소에 와서 샤워를 하고 <위처>를 한편 볼까 하다가 졸음이 쏟아져 포기했다. 그러다 파리 와서 작가 신청한 브런치로부터 소식이 있나 접속해보았다. 오! 됐다. 이제 긴 글은 브런치에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파리 여행을 시작으로 블로그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잘 된 일이었다.
그러고는 바로 누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