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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CP Feb 07. 2020

나 홀로 첫 파리 여행 - 5일 차

팡테옹은 뿅테옹

본래 이 날 일정 계획상의 메인은 마레 지구였다. 하지만 전날 가지 못 했던 생트 샤펠과 흥미가 많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들러볼까 싶었던 팡테옹을 얼른 갔다가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레 지구가 세느강 북쪽에 있어 포인트 중 가장 남쪽인 팡테옹을 시작으로 시테섬, 생트 샤펠을 거쳐 생루이 섬을 지나 마레 지구를 걷는 것을 일정의 줄기로 삼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팡테옹이야말로
파리 문화와 역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
팡테옹 앞. 날씨가 좋았지만 그래봐야 겨울이라 추웠는데 돌바닥에 앉아 cafe를 마시고 샐러드 도시락을 먹는 이들이 인상적이었다.


파리가 업적을 이룬 이들을 존중하는 방식

팡테옹은 1744년, 루이 15세가 자신의 병이 성녀 주느비에브에게 한 기도로 나았다고 믿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성녀에게 대건축물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1755년, 건축가 수폴로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견주겠다는 야망을 품은 이 프로젝트는 1790년에 이르러 수폴로의 동료 롱들레에 의해 완공되었다.



팡테옹 내부에 들어가면 외부에서 느껴지던 웅장함 이상의 웅장함에 압도된다. 내부를 채우고 있는 장식 예술의 아우라와 입체적 공간감이 한 번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전 지식이 충분치 않았던 나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부터 찾았는데, 다행히 있었다.


내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정치사의 위인뿐 아니라 퀴리 부인,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등 과학•문화사적 위인들도 함께 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이들도 당대의 의식 있는 지식인으로서 각자의 방식대로 정치 참여를 하였기에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벽면에는 어마어마한 역사화 그리고 기둥에는 계속 봐도 기가 찰 정도로 대단한 대형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홀 중앙에서는 푸코의 진자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이 팡테옹에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나는 ‘진짜 프랑스 역사 공부 좀 해야겠다.’ 고 또 되뇌며 조용하고 천천히, 일정한 규칙성을 보이며 허공을 도는 진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67m에 이른다는 쇠줄을 따라  시선을 올려가며 목이 꺾어져라 천장을 쳐다보기도 했다. 워낙 공부가 부족해 그것을 어떤 원리로 증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가 말했던 지구의 공전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잠깐이나마 지구의 움직임을 느낀 것 같았다.



존경받을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팡테옹의 지하는 무덤이다. 위에 언급한 이들을 포함해 여러 위인들이 경건한 모습으로 안장되어 있다. 프랑스는 수백 년 전 역사 속 인물뿐 아니라 최근 사망한 인물들까지 엄선하여 모시고 있다. 이곳에 안장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이슈가 되기도 하는 등 팡테옹이야말로 프랑스 정신의 상징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들어가자마자 입구 쪽 양 옆으로 철학자 볼테르와 루소의 관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양 옆으로 관을 모시고 있는 여러 개의 방이 펼쳐진 구조다.

<레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 <삼총사>의 알렉상드르 뒤마, <목로주점>의 에밀 졸라가 한 방에 모셔져 있다.

팡테옹을 가보면 파리의 서점들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문학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느낄 수 있다.


팡테옹의 단 하나 아쉬웠던 점은 한국어 가이드가 해설 대상과 매칭 하며 청취하는데 다소 난해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바보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파리에서 접한 대부분의 한국어 가이드가 정말로 은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점은 가끔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표현의 서술이 있다든지, 내레이터 혹은 해설 번역자가 해설 대상을 보지 않고 주어진 텍스트로만 자기 일을 묵묵히 했나 싶은 으잉?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림 오른쪽에 대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데 뭔가 이상해서 보면 왼쪽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하하.

그리고 가본 모든 곳들에 한국어 가이드가 있으면 좋을 텐데 얼마나 많은 곳에 구비되어 있는가 측면에서 봤을 때 중국어, 일본어에 비해 크게 뒤지는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파리 관광객 중 한국인의 비중이 크지 않는 건가 싶었다. 더 많은 한국인이 파리 여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한국어 가이드가 없는 곳에는 생기고, 있는 곳에서는 싹 리뉴얼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럼 나도 또 가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느끼고 싶다.


아무튼 나를 뿅 가게 만든 팡테옹에서 나와 한국어 가이드가 없는 생트 샤펠로 향했다. 전날 시테섬 주위를 거닐면서 그곳이 그곳인 줄도 모르고 옆길을 걸었다는 것을 체크해두었기에 무리 없이 걸어 나갔다. 그러다 동선상 노트르담 대성당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길로 지나가면 되겠다 싶어 잠깐 지나쳐가기로 했다. 잠깐을 목표로 하고 가야 하는 것이 슬펐지만.



걷다 허기를 느껴 바케트 샌드위치와 카페 알롱제를 사들고 세느강변을 잠시 걷다 다리를 건넜는데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상상했던 파리가 완성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리 끝에 서서 두꺼운 돌로 만들어진 다리 난간 위에 잠시 카페 알롱제를 올려두고 음악을 느꼈다. 노란 햇살이 비치는 다리 너머 시테섬 초입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왔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노천에서 흥을 즐겼다. 그들 너머 저 뒤로는 복원 공사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였다. 노트르담을 응원하는 퍼포먼스로 느껴졌다. 동전 하나를 기타 박스에 넣자 리더로 보이는 머플러 한 남자 연주자 분이 나를 향해 환한 미소와 함께 엄지 척을 보냈다. 난 행복한 미소와 Two thumbs up으로 답을 하고 성당으로 향했다.



에스메랄다와 콰지모도가 슬퍼하겠네

2019년 4월 15일, 보수 중인 첨탑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첨탑과 그 주변 지붕이 붕괴되었다. 난 그 사실도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어느 해인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팀 내한 공연을 본 적이 있지만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고 <노틀담의 꼽추>라는 이야기는 내게는 강한 인상을 주었던 이야기도 아니었다. 때문에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냥 그런 성당이 있다는 걸 아는 정도의 그런 성당이었다. 그런데 파리의 성당을 몇 군데 경험해보고 눈앞의 노트르담이 훼손된 모습을 보니, 게다가 그것을 올려다보며 진심으로 아파하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나도 가슴 아린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텍스트를 읽고 싶다는 욕망과 다시 파리에 와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일었다.



가장 실망한 곳이었달까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길을 건너 조금만 걷자 금세 생트 샤펠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감되었던 곳인 콩시에르주리와 붙어 있어 두 곳 모두 관람하고 싶었지만 콩시에르주리는 문을 닫는 날이었다. 티켓을 살 때부터 싸한 느낌이 들더라니 설렘 속에 걸어 들어간 생트 샤펠은 뭐랄까... 콘텐츠가 너무 풍성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누릴 줄 몰랐던 것이겠지만.)

아마도 날이 조금 어둑해진 늦은 오후에 들어간 탓도 있었을 것이다. 13세기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 2층은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햇살을 받았다면 더 영적이고 생동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성당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창세기는 물론 모세의 탈출기 등 성서의 1,134 장면을 표현한 것인데 나이롱 천주교 신자였던 나로서는 공부가 부족해서인지 그림과 스토리를 매칭 해가며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오디오 가이드는 물론 한국어 브로셔도 없어 감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와보기로 하고...



생루이섬을 지나 마레 지구로

생루이 다리를 건너 생루이섬으로 들어갔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디자인 소품을 몇 가지 사고 거리의 이쁨을 그냥 즐겼다.



아무래도 때를 잘 못 맞춘듯한

바스티유 광장을 지나 화장실을 잠시 들어갈 수 있을까 싶어 오페라 바스티유를 기웃거리다가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마레 지구로 향했다.

마레 지구에서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우리로 치면 명동 같기도 하고 가로수 길 같기도 하고, 파리의 많은 곳들이 그러하듯 예쁜 건물에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했다.

이번 여행에서 갈까 말까 고민 중이던 퐁피두 센터에서 패션쇼를 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백화점 같은 곳을 둘러보다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였다. (파리 여행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은 ‘변의’였다. 우리처럼 도처에 화장실이 널린 도시가 아니었다. 지하철에 화장실이 없는 곳이 많았고, 내가 잘 몰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슥 들어가서 볼 일을 볼만한 프랜차이즈 카페도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도 화장실을 찾아 헤맨 날은 이 날 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희한하게 파리에서 식욕이 별로 없어 평균 1.5끼를 먹었던 것 같은데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레 지구는 대충 둘러봤다 싶어 다음 목적지로 향하던 중 한 주점이 남성들로 득시글 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인기 있는 펍인가, 들어가 볼까 하다가 궁금해서 구글 지도로 확인해봤더니 게이바였다.



오랜만에 스윙에 취할 수 있을까

결국 마레 지구에서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스윙 댄스 프로그램이 있다는 CAFE OPERA BASTILLE에 도착했다. 혼자 음악을 즐기면서 술 한 잔을 즐기고 싶어 전날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문득, 파리에도 스윙 바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구글에 ‘파리 스윙댄스’를 입력, 검색하여 찾아둔 곳이다. 찾았던 웹페이지는 파리의 스윙 댄스 프로그램을 캘린더 형태로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두었는데, 나처럼 파리 여행 중 스윙 클럽을 찾은 어떤 한국인 여행자 분이 그 여정을 여러 URL과 함께 작성해주신 페이지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분과 온라인 세상에 대한 감사를 보냈다.


하지만 결국 안에 들어가 보진 않았다. 내가 상상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아내와 스윙 바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떠올랐고. 하지만 나는 뭔가 좀 더 신나고 역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흥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잔잔해 보였달까.

한국에 돌아온 지 2주 정도 되어가는 지금은 조금 후회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냥 들어가 볼걸.





덧)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는 이런 것이 계속 이어지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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