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딸루냐 지역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카스티야 지역과는 다른 민족과 문화로 구성된 지역이다. 스스로를 스페인이 아니라 카딸루냐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듯하다. 스페인의 일부로서의 카딸루냐가 아닌, 스페인과 구분된 카딸루냐 고유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 지역의 독립의지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통일 스페인 왕국의 역사와 함께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10월을 기점으로 독립에 관한 문제는 스페인 전 국가적인 이슈가 되었고, 중앙과 지역 간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2017년 가을, 카딸루냐 정부는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강행했고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투표가 진행되지 못하게 경찰을 보내고 시위대를 과잉 진압했으며, 투표를 주도한 정치인들을 기소하기까지 했다. 이때의 충돌로 카딸루냐 주민들의 감정이 격앙되고 중앙정부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카딸루냐와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엄청나게 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집집마다 걸려있는 깃발들의 모양이 조금씩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 깃발들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 상징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1.
공식적인 카딸루냐 주의 깃발은 노란 바탕에 빨간 선이 네 줄 그어진 모양이다. 주로 도로나 공공청사에 스페인 국기와 나란히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반면 바르셀로나 거리 곳곳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던 깃발은 푸른 삼각형 안에 흰 별이 박혀있는 깃발이다. 단순히 카딸루냐 지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적 의미뿐 아니라 독립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삼각형과 별 무늬는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때 독립의 상징으로 쓰였던 흰 별을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3.
가끔 흰 별 대신 빨간 별과 함께 있는 카딸루냐기가 보이는데 이는 사회주의적 독립을 지지하는 정치적 상징이라고 한다.
#4.
그밖에도 검은색 별을 단 깃발도 있다고 하던데, 이는 아나키스트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상징이다. 아주 소수의 입장으로 라발 지구 거리 어딘가에 걸려있을 법하다.
#5.
깃발은 아니지만 노란 리본도 흔히 보이는데, 발코니뿐 아니라 담벼락이나 공공기물에도 그려져 있고, 노란 리본 배지를 단 사람들도 있다.
카딸루냐에서 노란 리본은 스페인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카탈루냐 정치인들의 석방과 자유를 의미한다. 그들의 리더들이 무사 귀환하길 염원하는 시민들의 마음, 부당한 조치에 의해 탄압받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런 마음을 함께하는 연대가 낯설지만은 않다.
#6.
마지막으로 스페인 국기가 걸려 있는 풍경도 빼먹을 수 없다. 프랑코의 파시즘 이후 스페인에서는 최근까지도 스페인 국기를 개인적으로 게양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시했다고 한다. 일본의 욱일기나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에 까지 비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마드리드 등에서는 스페인 국기를 내걸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의 거리에서도 종종 이렇게 스페인 국기가 카딸루냐 기와 나란히 걸려있는 발코니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카딸루냐인이지만 동시에 스페인 국민입니다'라는 입장이란다.
작년 실시된 국민투표에 참가한 주민의 비율이 40퍼센트 밖에 안됐다고 하니, 격앙된 감정에 비해 실제 독립을 원하는 인구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결국 과반수 이상은 현상유지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독립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입장들이 표출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스페인 그 어느 곳 보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바르셀로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의사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모습 역시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