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바르셀로나가 이만큼이나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역시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빠질 수 없다. 가우디는 평범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천재 건축가였고, 그의 죽음 역시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하루도 기도를 빼먹지 않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는 가우디, 74세의 어느 날 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그만 전차에 치여 중태에 빠지고 만다.
그는 평소에 걸인 같은 복장을 하고 다녔다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시선을 피하고자 했다는 설도 있고, 워낙 겸손하고 물질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이 부랑자 같은 모습 때문에 사고 현장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고, 몇 시간 동안이나 거리 위에서 방치되었다고 한다. 끝내 현재의 라발지구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병원, 산타 끄레 우 병원에 옮겨졌고, 그곳에서 며칠을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평소 시간을 칼 같이 지키던 가우디의 부재를 의아하게 여긴 친구들이 병원을 돌며 그를 찾아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병원에 드나들던 한 신부가 그를 마침내 알아봤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가우디의 신원은 병원에 실려온지 며칠이 지나서야 밝혀졌다고 한다. 그의 명망 높고 부유한 친구들은 당장 그를 자신들의 동네에 위치한 좋은 병원으로 옮기려 했지만 가우디는 그 와중에도 그러한 처우를 거절했다고 한다. 가난한 자들이 누워있는 바로 그곳에서 자신도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산타 끄레 우 병원은 이제 산빠우 산타 끄레우 도서관, 마사나 예술 대학 등으로 탈바꿈해서 사용되고 있다. 건물들로 둘러싸인 중정은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