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살아남는 법
예정보다 몇 주를 앞당겨 갑작스럽게 베타 서비스가 론칭되었다. 입사 한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유저를 지원해야 하는 최전선에서의 업무가 주어졌다. 준비되지 않은 채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기분이었다. 다른 동료들 역시 어느 정도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우리의 동요와 불안감을 느꼈는지 대표 S는 A4용지 한 장에 한 단어씩 큼지막하게 새긴 이 문장을 벽에 붙이고 있었다.
"Something good enough today is better than something perferct tomorrow."
주저하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빨리빨리 속도 내서 일하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눈 앞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강력한 주문으로 인해 주저함과 불안함에 더해 불편함까지 얹어졌고 사무실을 둘러싼 분위기는 한 층 더 묘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조급해야만 하는 걸까'.
그때부터 줄곧 나는 남몰래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준비되지 않은 서비스를 무리해서 시장에 내놓으려는 걸까. 왜 기존 서비스를 보완하고 완성할 틈도 없이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을 계속 추가하려고 하는 걸까. 세심하게 공들여서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소비자들이 실망하고 이탈할 확률도 훨씬 낮아지지 않을까.
입사 초기에 S가 1년쯤 후면 승부가 날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진짜 1년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만큼 짧은 기간 내에 회사의 성공과 실패가 갈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의 1주일이 대기업의 1주일과 같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기업이라면 새로운 제품의 사업성을 분석하고 검토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업무조율을 하는 데만도 몇 주를 흘려보낼 수도 있다. 여러 팀이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완벽한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몇 달을 세심하게 공들일 것이다.
반면 자원이 한정적인 스타트업은 빠른 시간 내에 승부를 내야 한다. 완벽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할 시간도, 인력도, 자금도 없는 스타트업은 고객을 통해 시장성을 검증하고 고객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고객과 함께 상품을 만들어 간다. 총알받이가 될지라도 일단 앞으로 전진해야만 어디를 보강하고 어느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서비스이기에 고객들의 피드백과 불만은 끊이지 않았고 바퀴벌레만큼이나 끈질긴 버그들로 인해 신뢰를 잃고 떠나가는 고객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 고객들도 많았다. 불량 고객의 유입으로 회사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그런 사례들을 계기로 우리의 약점과 리스크를 보완할 수 있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능과 서비스가 호응을 얻기도 했고, 호응을 얻으리라 기대했던 기능이 외면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혀 의도하지 못했던 집단이 가장 중요한 고객군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우리의 가설은 맞기도 했지만 틀리기도 했다.
그러니 일단 전진, 사격, 그리고 정밀 조준.
매일 같이 날아오는 총알에 피 흘리고 속이 상해 눈물을 흘리던 날도 있었지만, 그 상처가 아문 자리는 마치 운동의 자극으로 인해 찢어진 근육이 아문 후 더 단단해지고 커지는 것처럼 더 안정되고 강화된 기능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새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조무래기 병사에서 꽤나 단단하고 질긴 근육을 키워낸 것 같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스스로의 만족과 완벽함이라는 환상에 집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