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 이것도 못 해보고 죽게 생겼네. 어떡해.”
며칠 전 우리 집 정원을 방문한 어느 지인이 목련꽃이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벤치에 앉아서 내뱉은 말이다. 정원 가꾸기를 한 번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예쁜 정원을 보니 너무 좋고, 한편으로 안타까움과 회한이 몰려와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했다. 아내가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베란다 정원이든 텃밭 정원이든 해보시라고 이야기를 건넸지만 그리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내가 위로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정원을 가꾼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정원을 가진 친구를 둔 사람이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은퇴를 하거나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시골에 텃밭을 가꾸고 정원을 조성하는 전원주택 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현실의 벽을 탓하며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무언가를 얻는 일이란 또 다른 무언가를 잃어야 하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놓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바라는 무언가를 위해서 가진 것을 놓을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막연한 이상을 추구하기에는 현실적 열망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인생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갈망을 동시에 허락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한다는 인생의 후회는 대부분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미 해보았다면 더 이상 후회도 갈망도 여한도 없을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일단 시도하고 부딪혀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해보지 않았거나 뒤로 미루었던 일들은 인생을 떠나면서 후회와 회한으로 남는다. 안 해보았고 안 가본 길이기에 미련이 남는 것이다.
사람들이 꿈은 꾸지만 선뜻 실행해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대상을 너무 거창하고 무겁게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너무 큰 기대나 환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 어쩌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첫 발걸음, 첫 시도를 주저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부터 정원 가꾸기를 꿈꾼 건 아니었다. 하나 둘 사 모은 화분으로 아파트 베란다를 채웠다. 어느 볕 좋은 날, 유리문을 열었을 때였다. 달콤한 꽃의 향기와 은은한 흙냄새, 울긋불긋 꽃잎과 푸른 잎들의 조화가 마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가만히 빈자리에 누웠다. 초록의 향기와 색깔에 내 몸이 젖어들었다. 밧줄처럼 내 몸을 친친 감고 있던 온갖 걱정과 기우와 스트레스가 어느새 스르르 풀어져 사라졌다. 평온한 들판을 고요히 거니는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내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정원을 만들자.” 나와 아내의 꿈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우연하게 맞이한 위안과 기쁨이 운명 같은 희망을 품도록 만든 것이었다. 닥쳐올 고난은 예견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몇 년을 헤매도 보이지 않더니, 운 좋게 근교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집을 짓고 정원을 가꿔 나갔다. 설계를 직접 하고 돌을 나르고 나무를 심었다. 주말의 노동은 근육통과 몸살을 가져다주었다. 손등 여기저기 긁힌 상처들, 온몸에 바른 파스 냄새를 맡으며 출근하던 날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귀하게 얻어서 아끼던 나무가 그만 시름시름 앓더니 죽어버렸다. 잎이 말라버린 나무의 밑동을 톱으로 잘랐다. 톱날이 나무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뻑뻑해졌다. 힘을 더욱 쏟아야만 했고 그럴수록 근육의 통증은 조여 오고 숨은 가빠왔다. 그때였다. 톱날을 세게 당겼을 때 손에 뭔가 스치는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순간 장갑을 급히 벗었다. 붉은 피가 터져 나와 손가락을 적시고 뚝뚝 흘러내렸다. 손수건으로 쓰려오는 상처를 감싸고 급히 응급실로 달려갔다. 휴일 당직 의사가 상처를 꿰매고 파상풍 주사를 놓아주었다. 손가락이 날아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몇 년이 지나 정원이 자리를 잡아가자 예상을 뛰어넘는 잡초들의 공습이 맹렬히 솟구쳤다. 허리가 빠지도록 호미질을 해야 했다. 과실수가 제법 커져서 결실을 기대하던 무렵, 병해충이 시작되더니 결국 가을에는 수확을 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두더지가 이사를 와서 땅밑을 온통 파헤쳐놓는 바람에 비싸게 산 화초들이 말라서 죽었다. 가뭄이 든 해에는 팔이 빠지도록 물통을 나르며 비쩍 마른 관목과 꽃들에게 물을 줘야만 했고 태풍이 몰아친 날에는 애써 키운 이팝나무가 부러지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경관 속에도 어김없이 냉엄한 자연의 질서가 숨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원에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며 경치를 즐길 것이라 상상하지만 그 순간은 짧고 노동은 길다. 며칠 전 아름다운 정원을 꿈꾸며 벤치에 앉아 한탄하던 그 지인은 이런 일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을까.
정원을 처음 조성할 무렵 강아지를 데려왔었다. 아끼던 꽃을 밟아 죽이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 무던히도 속을 상하게 했다. 여러 계절이 지났다. 녀석이 어느새 성큼 자라난 만큼 정원의 초목도 울창해졌다. 호기심 많던 그 장난꾸러기가 더 이상 정원을 망치지 않고 얌전해져서 철이 들었나 싶었더니 어느 날부터 일어설 때 끄응거리며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통과 행복이 교차하던 십여 년의 세월이 금세 지나가 버렸고 우리의 반려견도 노견이 돼버렸던 것이다. 녀석은 어느 한밤중, 작별인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화장을 해서 양지바른 나무 곁에 묻어주고 돌아온 아내는 말없이 견사를 정리하고 떨어진 낙엽을 쓸더니 녀석이 늘 누워있던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텅 빈 공간 막대기만 꽂은 것 같던 그곳에서 뛰어놀던 녀석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정원은 녀석과 함께 자라나 높고 굵은 나무와 풍성한 꽃들로 성숙해져 있었다.
정원을 가꾸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울고 웃고 또 이별해야 했다. 우연한 계기로 갖게 된 꿈과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지난 세월들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상당 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내가 가지고 얻으려 했던 이상이 마냥 행복한 낭만이 아니었음을, 고통이 찾아드는 현실이었음을 기억한다. 지난 시간, 정원을 가꾸면서 겪었던 일들과 노력과 아픔을 미리 알았더라면 애초에 시도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고, 몰랐으니까 감히 도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결혼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의무와 유지와 성숙과 권태를 이겨내는 험난한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정원을 가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완성은 없고 과정만 있을 뿐. 꿈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 그것을 마치 주문처럼 읊어대는 일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옷감은 운명과 행운의 교직이니까.
새벽에 깼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흥건했다. 요즘 걱정이 많아져서일까 아니면 건강이 나빠진 걸까 잠이 쉬 깨고 깬 잠은 다시 잘 들지를 못한다. 이런저런 생각과 우려와 염려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끊임없이 이어져서 불면의 밤이 길어지곤 한다. 불안과 공포와 근심이 증폭되어 이리저리 뒤척이기를 한참.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새벽 세 시.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또렷해져 버렸다. 수면제용 책을 꺼내서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아서 책을 덮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생과 꿈은 같은 책의 다른 페이지라는 누군가의 글이 다독임처럼 떠올랐다. 갖고 싶다는 욕망과 이루려는 집착으로 점철된 우리들의 삶, 잠들지 못하는 시간과 잠들어 헤매는 꿈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 악몽도 꿈이라 여기면 견딜 만 해질 것이라는 인식이 어둠 속에서 외로이 서있는 정원 속 태양광 조명처럼 반짝였다.
나무들은 고요하게 잠이 들었고 희미한 형태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추위를 극복하고 다시 돌아오는 동백꽃과 목련의 신비, 한여름 무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수국과 에키네시아의 아름다움, 서리를 맞고도 화려한 국화의 경이. 이 모두는 익숙하면서도 또 새로운 느낌과 감상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수많은 염려와 노고로 자녀를 장성시킨 부모의 심경처럼, 정원을 가꾼 일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많은 것들을 얻었고 누렸다.
언젠가 나는 이 정원과 작별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정원은 집사였던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줄까? 아니, 오히려 내가 정원에게 고마웠노라고, 그동안 전해준 위로와 기쁨과 즐거움에 행복했노라고,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너를 가꿔야 한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 고백하리라. 한 시간 여 지나니까 다시 졸음이 왔고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며칠 전 ‘이것도 못해보고 죽게 생겼다’ 던 지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불면으로 경직된 나의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깊이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모두 꿈이야. 당신의 갈망도 나의 고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