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소리가 보이나요

수필

by 힉엣눙크

밤새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오후에 그치고 해가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미세먼지가 씻긴 말끔한 하늘과 청명한 공기. 먼 산까지 환하게 보이는 경관과 더욱 푸르러진 산과 들의 새싹들. 그때 어디선가 맑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울렸다. 망원경으로 이리저리 찾았으나 소리의 근원을 쉬 찾을 수 없었다. 정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꽃사과 나무 가지 꼭대기를 살피다가 녀석을 발견했다. '검은이마직박구리‘였다. 꾀꼬리, 종달새 소리를 닮은 노래가 봄비 내린 촉촉한 정원을 가득 울려주었다. 새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경기민요가 떠오른다. 국악인 송소희의 영롱한 소리와 굴림은 마치 새소리처럼 들린다. 그녀의 노래를 접하면 우리 조상들이 노래 잘하는 사람을 왜 꾀꼬리에 비유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경기민요 창법은 알엔비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감탄할 때가 종종 있다. 포르투갈의 파두 음악으로 유명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의 모르나 음악을 널리 알린 세자리아 에보라처럼 국악으로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유명 가수가 탄생했으면 좋겠다.


귀에서 나는 덜그럭 거리는 소리 때문에 어느 지인이 최근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다고 말한 게 생각이 났다. 의사는 흡입기로 귀지를 빼냈다고 한다. 귀 청소를 하고 나니 신경을 거스르던 소음이 사라져 속이 다 시원하다며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조카가 예전에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병원에 간 일화를 들려줬다. 의사가 귀를 들여다보니 귀지가 고막을 막고 있더란다. 귀가 뚫린 조카의 첫마디는 "시끄러워" 였다고 한다.


어릴 때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귀지를 팠던 기억이 있다. 귀를 파는 일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서 우리는 도망가기 바빴지만 구슬리거나 억지로 잡혀서 귀를 파야만 했다. “이거 봐라. 얼마나 큰 게 들어 있었는지. 그동안 잘 안 들렸지?” 뻘밭에 손을 깊숙이 집어넣어 세발낙지를 잡아 올린 아낙처럼 엄마는 자랑스럽게 내 귀에서 방금 캔 싱싱한 귀지를 눈앞에 들이밀었었다.


귀를 파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쉬 끊지 못하고 그 은밀한 구멍 속을 귀이개 내지는 면봉을 이용해서 청소를 하는 것일까? 대개 지저분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목욕 후에 귀에 들어간 물이 마르면서 귀가 가렵기도 하고 또 귀 안쪽은 미주신경이 지나가는 자리라 면봉이나 귀이개로 건드리면 묘한 쾌락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한 번 맛을 들이면 중독될 수밖에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귀는 중요한 신체 부위이다. 위험을 알아차리거나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한다. 신경이 밀집되어 교차하는 곳이고 미세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성감대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귀를 파는 것은 무의식적인 유사 자위행위일지도 모른다.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큼 귀는 인간에게 귀중하면서도 내밀하다.


우리의 시각은 앞만 볼 수 있지만 청각은 사방팔방에서 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자고 있을 때에도. 소리의 특성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대기는 물론이고 물속에서도 금속 너머에서도 심지어 콘크리트 너머 층간소음도 들을 수 있다. 소리는 생기면 곧 사라진다. 물질은 사라져 흔적을 남기지만 소리는 자취도 없다. 보지 않으려면 내가 고개를 돌리면 되지만 소리는 억지로 귀를 틀어막지 않는 이상 속수무책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귀에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백성이 두드리는 신문고 소리, 생명체는 그 존재의 절박함을 각종 소리로 전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상영되고 있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멸망을 목전에 둔 지구를 살리기 위해 벌이는 인류의 사투를 다뤘다. 농구경기가 끝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쏘아 올리는 공처럼 주인공을 실은 우주선은 실마리를 찾아 떠난다. ‘헤일 메리(Hail Mary)’는 원래 신약성경의 기도문에 나오는 ‘아베 마리아(Ave Maria : ‘안녕하십니까 마리아여’)‘의 영어식 표기이다. 우주 저편에서 외계 생명체와 소통하는 이 영화에서 소리는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다. 기도문처럼. 기도란 나의 마음을 열어서 세상과 연결하는 소리다. 인간이 고귀해질 수 있는 건 의미를 지닌다는 것, 나라는 아집을 버릴 수 있는 용기 때문임을 영화는 묵직하게 전해준다.


천주교에 마리아가 있다면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이 있다. 관세음보살은 한자어로 '세상의 소리를 보는 분‘이란 뜻이다. 고통에 빠진 생명이 부르는 간절한 구원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자비를 베푼다는 뜻이리라. 마음의 소리는 구원의 기도이다.


귀가 뚫린 지인의 조카가 터뜨린 외침처럼 이 세상은 지금 혹독하게 "시끄럽다." 전쟁과 분쟁이 지구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 서로의 소리를 바라보는 자비가 깃들기를, 봄날의 정원에 울리는 '검은이마직박구리‘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온 세상에 널리 울리는 날이 어서 오기를 '헤일 메리‘ '관세음보살‘ 가만히 소리 내어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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