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의 본색

수필

by 힉엣눙크

“마트에 갔더니 봄동이 없더라고.”


봄동을 겉절이로 먹곤 했는데 이번 봄에는 마트에서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어느 지인의 푸념이었다. 아마도 최근 ‘봄동 비빔밥’ 열풍으로 품귀현상이 빚어진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봄동 비빔밥 유행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연예인 강호동이 2008년 1박 2일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봄동 비빔밥 영상이 최근 쇼츠로 만들어져서 유통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먹방’과 ‘갓생’ 살기 열풍, 할매니얼, 온라인 문화가 혼합된 사회적 현상인 것이다.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밴드왜건 효과’ 혹은 ‘미러링’이라고 한다. ‘미러링’이란 우리 인간의 두뇌에는 ‘거울 뉴런’이 있어서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고 공감하고 그 의도를 파악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밴드왜건 효과’가 집단적 층위에서 일어나는 거시적 현상이라면, ‘미러링’은 개인적으로 발현되는 미시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옆에 사람이 하품을 하면 따라 하고, 타인이 공포나 우울을 느끼면 쉽게 동화되는 일 등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종종 경험하는 미러링 효과다.


“너 왜 수업시간에 메롱하는 것처럼 혀를 내밀곤 해?”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난 후 나에게 물었던 말이다. 담임 선생님은 칠판에 판서를 하실 때면 항상 혀를 내밀어서 아랫입술을 누르곤 하셨다. 아마도 내가 그 선생님의 버릇을 은연중에 '미러링'을 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직접 나를 불러 얘기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왜 엄마에게 에둘러 말씀하셨을까? 나의 모방 행위가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행동으로 여겨져 속앓이를 했는지 모를 일이다. 표정이나 말투, 행동을 따라 하는 미러링 행위를 하면 대개 상대가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의 뇌가 유사성을 친밀감이나 신뢰의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때때로 놀림이나 조롱으로 여기기도 한다. 미러링을 일부러 또는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 하거나 모방하고 흉내 내는 일도 누군가는 상처를 입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수 있으니 가려서 해야 하리라.


1950년대 일본의 교토 대학 연구진이 미야자키현 고시마 섬의 야생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관찰한 연구 결과를 읽은 적이 있다. 연구자들이 고구마를 원숭이들에게 제공을 했더니 어느 서열이 낮은 암컷 원숭이가 흙이 묻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었다. 아주 유용하고 똑똑한 발견이었지만 가까운 관계에 있는 몇몇 원숭이들만이 따라 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두머리 원숭이가 그 행동을 따라 하자 나머지 구성원들이 삽시간에 학습했다고 한다. 인간들의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진다. 누구의 가방, 옷, 굿즈, 그리고 먹방이나 밈이 실시간으로 어지러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적 ‘미러링’은 권력자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 이면에는 유명인을 따라 해야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으리라는 무의식적 생존의식,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맹자의 공자 사숙(私淑)이나 전통 장인들의 도제 수업. 관습이나 전통의 계승, 비즈니스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벤치마킹’. 예술분야에서의 패러디나 샘플링, 오마주. 공연장에서 수만 명이 함께하는 헤드뱅잉까지. 인류의 문화는 통시적ㆍ공시적으로 ‘미러링’이다.


80년대 말, 홍콩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이 생각난다. 사나이들의 의리와 낭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당당하던 뒷모습. 주윤발을 흉내 내며 바바리코트에 선글라스, 성냥개비 하나 입에 물고 세상을 다 가진 듯했던 그 푸르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저질러놓고서 발뺌하고, 오리발 내밀고, 남탓하는 세태 속에서 그 많았던 영웅들의 본색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흉내 내고 모방하고 따라한 것은 본색(本色)이 아니라 외색(外色)이었던 것일까.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이제 현시대의 주축이 되었다. 일부는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자들이 된 지금, 몇몇은 신의, 사랑, 공감, 연민이라는 인류의 본령(本領)을 외면하고 배신,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외도(外道)를 일삼으며 세상 사람들을 전쟁과 도탄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다. 폭격에 가족을 잃고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망향가가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봄동은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 안의 전분을 당분으로 변화시켜서 세포가 얼지 않도록 필사의 노력을 한다. 또한 겨울철 수분이 적은 땅에서 자라기 때문에 섬유질이 더욱 촘촘하여 아삭한 식감이 배가된다고 한다. 봄동이 달콤하고 아삭한 맛을 내는 이유이다. 수세기 동안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지배를 받아야만 했던 북유럽의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 라트비아처럼 말이다.


가수 심수봉이 불렀던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은 슬픈 역사와 고난이 담긴 라트비아 노래였는데 러시아가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로 번안하면서 유명해진 곡이다. 라트비아에는 낮이 가장 긴 하지에 맞이하는 ‘야니’라는 축제가 있다. 하지 전날 밤에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잠들지 않는 밤을 보낸다고 한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우리네 동지 풍습처럼 말이다. 햇살이 귀한 그 지역에서 하지는 가장 밝은 날이다. 겨울이 길고 혹독하기로 유명한 나라에서 빛과 따사로움은 각별하고 사랑스럽고 애틋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순간을 소중하게 맞이해야만 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을 쓰고 여성들은 풍성한 소매의 흰색 리넨 셔츠에 긴 스커트를 입고 삼삼오오 들판을 누비며 만개한 야생화를 꺾어 화관을 만들어서 쓴다. 심지어 고양이나 개, 가축들에게도 씌운다. 그들은 밤새 모닥불을 피우며 맥주를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자정이 되면 연인들은 오직 하지 때만 핀다는 고사리 꽃을 찾아 숲 속으로 살며시 떠난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는 옛 전통이다. 비록 화면에서였지만 내가 본 세상의 축제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축제였다.


우리나라의 삼일절 만세운동처럼 1989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 3국의 국민들은 소련의 지배에 저항하며 사람과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600킬로미터가 넘는 인간 띠를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며 ‘발트의 길’이라는 평화적 저항운동을 펼쳤다. 겨울 벌판에 납작 엎드려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봄동의 생명력처럼 말이다. 1991년, 발트 3국은 마침내 소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미러링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이라는 밴드왜건을 뒤쫓는 세태 속에서 언젠가 꼭 한 번, 전 세계 지도자들이 아삭한 '봄동 비빔밥'을 나눠 먹으며 야생화 화관을 머리에 쓰고 밤새 모닥불 옆에서 얘기하고 노래하며 숲 속으로 사라지는 축제를 벌였으면 좋겠다.


온 세상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외색(外色)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노래하고 자연과 함께 춤추는 본색(本色)을 닮도록 말이다. 정원에 핀 싱그런 봄꽃들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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